후판 업계가 러시아-우크라아나 사태와 관련해 최대 후판 소비처인 조선업 경기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조선사 중 한 곳이 러시아 선주로부터 대금 입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가 발생해 우려가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커지고 있다.
후판 업계가 국내 조선업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러시아 동향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의 조선대금 결제 미이행으로 업계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중순, 대우조선해양은 유럽지역 선사로부터 지난 2020년에 수주한 액화천연가스 운반선(LNGC) 1척 건조 계약이 해지됐다고 밝혔다. 2020년, 대우조선해양은 유럽 지역 선사와 3척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했던 가운데 회사는 선주사 측이 최근까지도 1척에 대한 선박 건조 대금을 계약 기간 내 지급하지 않았다며 절차에 따라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2척은 대금 지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져 건조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관련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조선시장에서는 대금을 처리하지 않은 선주가 러시아계 회사라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 러시아 에너지 기업과 해운사들은 자국 LNG 프로젝트용 선박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조선업계에 척당 1천~4천억원에 이르는 LNG 선박 등을 대거 발주한 바 있다.
통상적으로 선박 신조선 대금은 조선사가 건조가 완료된 선박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집행된다. 현재 국내 조선소는 러시아 선박 7척을 건조하고 있다. 이들 선박이 건조된 이후 대금 결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조선업계는 주인이 사라진 선박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이는 곧 자금 흐름 둔화로 이어져 조선업계 부실화의 뇌관이 될 수 있다.
LNG 쇄빙선. 주로 러시아가 발주하고 한국이 수주하는 高기술·高부가가치 선종
러시아 선주 측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 제재 영향으로 대금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와 다수 건조 계약을 맺은 러시아 고객들이 다른 조선 수주 건에서도 계약 불이행에 나설지 주목된다.
특히 이번 사안은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소재 공급사인 후판 업계에도 심각한 우려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후판 제조업계는 조선업 부실화 시기, 공급 가격을 사실상 강제로 경제적 손해를 보며 공급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후판 업계는 단순 판매 손해만 본 것이 아니라 후판 업계는 신규 투자 중단과 공장 매각 등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치러야 했다. 때문에 후판 업계는 러시아 사태로 국내 조선업계가 다시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 절벽 시기 대규모 해고로 인한 작업자 부족 문제와 잦은 파업으로 인한 생산 중단, 강재 및 인건비 등 제조원가 급등, 선박 환경 규제 강화 등의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한 상태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조선업계가 다양한 해외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다국적 수주 잔량이 풍부한 만큼 러시아 발주 물량들에 문제가 생겨도 여파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시장에선 사실상 러시아 정도만 발주하는 시장인 LNG 쇄빙선 등에서 러시아와의 수주 건이 많은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신규 수주와 고부가가치선 대금 처리 문제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해 후판 제조업계는 러시아 사태로 일부 악재가 발생한 국내 조선업계를 상대로 물량과 납기 등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한편으로 후판 제조업계는 러시아산 저가(低價) 후판이 공급됐던 유럽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러시아 후판 수출은 전체 수출의 1% 남짓으로 러시아 제재로 인한 직접 수출 악화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