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기계는 공기, 물 등의 유동성 물질을 이용해 에너지를 교환하는 기계를 통칭하며, 산업용 전력의 24.3%를 사용하는 대표적 에너지 다소비 장치이다. 유체기계로는 펌프, 압축기, 송풍기를 꼽을 수 있으며, 이 가운데 펌프가 유체기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펌프는 유체를 끌어 올리거나 밀어내는 역할을 하는 유압장치로, 농업과 함께 시작됐을 만큼 그 역사가 길고, 물·기름·가스 등의 유체를 이동시키는 모든 부문에 사용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원장 이상목, 이하 생기원) 산업에너지연구부문 김진혁 수석연구원 연구팀이 국내 최초로 가변형 운전기술이 적용된 ‘중대형 축류펌프 핵심 원천 설계기술’을 개발했다.
가변형 운전기술이 적용된 중대형 축류펌프. (사진=생산기술연구원)기존 축류펌프는 최적 효율점(Best-Efficiency Point, BEP), 즉 유체의 토출량과 토출압력이 각각 100%가 되는 정격 운전 점에서 가장 높은 효율로 가동되도록 설계된다.
펌프는 유체의 양에 따라 부하(load : 전기를 띠게 하거나 기계의 힘을 내게 하는 부담, 또는 그 부담량) 변동이 상이한데, 최적 효율점을 벗어나면 저효율로 가동되기 때문에 대형펌프의 경우 에너지 효율이 20~30%까지 떨어진다.
이마저 국내 생산업체 대다수가 중소기업이고, 다른 유체기계에 비해 투자가 적어 기술 선진국으로부터 설계도면을 들여와 제품을 생산해 왔다.
김진혁 수석연구원 연구팀은 축류펌프에 가변형 입구 가이드 베인(Inlet Guide Vane, IGV) 운전기술을 적용, 유체의 양에 따라 운전패턴이 달라져도 높은 에너지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설계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머신러닝기반의 형상최적화 설계기술을 개발하고, 가변형 입구 가이드 베인을 설계해 축류펌프 구동 동력을 최대 20% 절감했다.
축류펌프는 임펠러(Impeller)를 회전시켜 유체를 축 방향으로 보내는 펌프로, 물속에서 프로펠러가 돌면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회전체가 회전하는 방향과 힘이 작용하는 방향이 같다.
양정(Head), 즉 펌프가 퍼 올릴 수 있는 높이는 낮은 반면 대용량 이송에 적합해 취·배수용으로 널리 쓰이고,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인한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면서 빗물배수용 펌프로 수요가 늘고 있다.
그런데 유체의 흡입방향과 토출방향이 같기 때문에 토출축이 막히면 심각한 와류(유체가 본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는 현상)가 형성돼 임펠러를 돌리는 동력이 올라가게 된다.
이때 임펠러 앞단에서 와류 형성을 억제하고, 운전 점에서의 성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가변 입구 가이드 베인이다.
연구팀은 먼저 속도삼각형(Triangle Velocity) 이론을 적용해 펌프의 운전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IGV의 각도를 변경할 수 있는 가변형 운전기술을 개발했다.
속도삼각형은 임펠러의 절대속도, 유동의 절대속도, 임펠러에 대한 유동의 상대속도 벡터가 이루는 삼각형을 가리키는 용어로, 물의 유입각과 펌프 임펠러 블레이드의 각도를 일치시킬 때 성능이 최대가 된다.
이를 통해 최적 효율점이 아닌 경우에도 유체의 양에 따라 IGV의 각도가 자동 변경되어 펌프의 동력을 절감할 수 있다.
개발을 이끈 김진혁 수석연구원은 “최적 효율점이 아닌 구간에서도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가변형 축류펌프 설계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핵심 원천기술”이라고 말하며 “개발된 성과를 바탕으로 노후화된 유입펌프 시설을 교체할 경우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배출은 줄여 저탄소 산업구조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성과는 2024년 3월 국제학술지 ‘Energy(IF 9.0, JCR 기준 상위 5% 이내)’를 비롯한 다수의 해외 저널에 게재되었고,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2년마다 선정하는 생산기술연구상 우수상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