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건설 선행지표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저성장, 고물가, 금융여건 등 대내외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남은 하반기에도 건설경기 부진이 지속될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4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건설 수주가 전년 대비 10.4% 급감한 170조2,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지난 연말 전망치(187조3,000억원) 대비 17조원 이상 추가 급감한다는 분석이다.
선행지표인 건설 수주는 2022년 229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바 있으나 이듬해 17.4% 급감한 189조8,000억원에 그친 뒤 올해까지 2년 연속 감소하는 셈이다.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등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 민간 수주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1~4월 건설수주는 49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6% 감소했는데, 공공부문(-2.4%) 대비 민간(-20.7%) 위축이 훨씬 더 큰 모습이다. 공종별로도 토목(-18.0%)과 건축(-14.2%) 모두 큰 폭으로 감소했다.
동행지표인 건설투자도 올해 302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올 1분기 건설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으나 지난해까지 건축 착공이 감소한 가운데 주거용과 비주거용 건축공사 부진이 지속돼 하반기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건산연은 내다봤다.
실제 올 상반기 주요 건설지표들은 뚜렷한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1~4월 선행지표인 건설수주(-15.6%)는 큰 폭 감소세를 보인 반면 같은 기간 동행지표인 건설기성(5.2%), 건축착공면적(1.2%)은 소폭 증가했다. 지난해까지 선행지표 악화를 고려하면 상반기 동행지표는 악화, 선행지표는 기저효과로 증감을 반복할 것으로 풀이된다.
이지혜 건산연 연구위원은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 및 건설금융 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며 "건설사들은 유동성 및 재무안정성 관리, 기술 투자를 통한 중장기적 경쟁력 제고 방안 모색, 포트폴리오 다변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올해 분양 물량은 26만호로 전년(19만2,000호) 대비 큰 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이는 지난해 큰 폭으로 감소했던 기저효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2008년과 동일한 수준의 공급량이란 설명이다. 주택 인허가 물량은 올해 37만호에 그치며 전년(42만9,000호) 대비 10% 이상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지난해 선행지표인 건축 허가와 동행지표 착공 면적은 유례 없이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건축 허가 면적은 1억3,508만㎡로 전년 대비 25.6% 급감했으며, 착공 면적도 31.7% 급감한 7,567만8,000㎡에 그쳤다.
재작년부터 착공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에는 전문건설업 선행 공종을 중심으로, 올해와 내년에는 각각 골조 공종과 마감 공종을 중심으로 연쇄적인 감소 효과가 예상된다.
■ 건설사 폐업 10년래 최대
잇따른 건설경기 침체로 단기적으로는 건설경기 부양, 장기적으로는 산업전환을 대비하는 대책 마련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최근 '건설산업 반등 가능한 경기 하락인가? 쇠퇴기로의 진입인가?' 보고서에서 "올해 들어 종합건설업 등록업체 수보다 폐업 신고가 많아 전반 업체 수 감소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건설업 폐업 신고는 지난해 총 3,562건(종합건설업 581건·전문건설업 2,981건)으로 종합·전문건설업종을 가리지 않고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폐업 신고도 전년 동기 대비 6.3% 늘어난 998건으로 폐업 증가 추세는 올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폐업신고율(등록업체 대비 폐업신고 수) 역시 재작년 3.5%에서 지난해 4.2%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약 4.4%로 높아질 것으로 건정연은 예상했다.
건설업 부도 건수는 △2021년 12건 △2022년 14건 △2023년 21건 등으로 2년 연속 증가했지만, 업체 수가 더 적었던 2020년(24건)에 비하면 3건이 적어 아직 부도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올 들어 부도난 업체 12개사 가운데 10개사가 지방업체라는 점은 지방 업체의 경영 현황이 더 좋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폐업 신고 건수에서도 수도권(1,500건)은 2020년에 비해 30.7% 늘어난 데 비해 지방(2,062건)은 61.3% 급증하며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를 보였다.
폐업과 부도는 늘고 있지만 건설업에 새로 진입하는 업체는 감소하는 추세다.
김태준 건정연 연구위원은 "이번 건설경기 침체는 12년 만에 도래한 극심한 불황으로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설산업의 생애주기가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로 진입하는 전조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쇠퇴기 진입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 산업의 자연스러운 전환이 어려워 급격한 일자리 감소 등 내수시장에 충격과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며 "쇠퇴기로 진입한다고 해도 완만히 이뤄질 수 있도록 단기적으로는 건설경기 부양, 장기적으로는 산업전환을 대비하는 선제적이고 현명한 대책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