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의 협회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체육계의 문제가 ‘협회’나 비슷한 이름을 가진 집단에도 비교와 그 성과의 차이에 대한 분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업계에도 ‘한국철강협회’라는 산업 단체가 있다. 설립 목적은 ‘철강산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국가 경제 발전과 선진화에 기여하고, 철강·회원간의 친목을 증진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철강협회에 대한 구성원들의 실제 평가는 어떨까. 다행인 점은 여느 협회들처럼 각종 비리가 있거나 월권행위가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다. 다만 일을 안 하거나 너무 못해서 업계에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피드백만 있을 뿐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데이터 관리가 좀 느린 것은 애교 수준이다.
우리나라 조강 생산 실적은 세계철강협회(WSA)에서 먼저 알 수 있고, 각사 제품별 월별 생산·판매 데이터는 꼬박 두 어달을 기다려야 알 수 있다. 수출입 실적은 데이터 변경이 매우 잦다. 또 수요개발팀과 산학연 연구개발을 위해 수많은 협의회를 두고서 연구용역 입찰 공고에 곧잘 기댄다.
회원사를 들러리로 세우기도 한다.
정회원은 일관제철소 2곳과 나머지 37개 제조·가공사로 구성되어 있다. 강관사는 10곳, 냉연도금사는 7곳, 선재가공 5곳인데 다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이다.
협회장이 50년째 일관제철소 출신으로 선출되고, 회비도 그들보다 적게 내기 때문에 협회 논리는 철저한 자본주의에 맞게 흘러간다. 차등적 대우와 상대적 박탈감에 지쳐 나간 회원사도, 나갈 회원사도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입재 피해 조사와 무역 규제 신청은 셀프(self)다.
협회가 업계별 회의를 마련해 준다고는 하나 그마저도 비정기적이며 장소 대여, 의견 청취에 그친다. 해결해 주지 않아도 되는 고민은 기자도 얼마든 들어줄 수 있다.
업(業)의 성격이 다양해 적극 대응해 주는 것이 어렵다며 어물쩍 넘길 때가 아니다. 업계의 고민을 해결하라고 협회가 있는 것이다. EU집행위에 툭하면 반덤핑 제소장을 접수하는 유럽철강협회, 중국산 제품에 강도 높은 불편함을 보이고 있는 브라질·인도철강협회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수입재와의 전쟁에서 철강업계가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협회만 딴 세상이다. 수출 비중이 높지 않은 미국에 ‘대미(對美) 아웃리치 사절단’으로, 별 소득도 없는 EU 탄소국경제도(CBAM) 대응 회의는 잊지 않고 참석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미국 쿼터가 늘었거나 무역 규제가 완화됐거나, CBAM 관련 정부 지원이라도 받아왔다면 아무 말 않겠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업계를 위한 읍소(泣訴)다.
국토교통부가 건축법 개정안으로 컬러강판을 탈 수도 있는 불쏘시개 취급을 할 때 강판이 아닌 심재 문제라고 대변하지 않았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로 내수 시장이 쑥대밭이 됐음에도 목소리 한번 내준 적 없다.
다른 협회는 나설 때 좌시하지 않는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코로나19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에 30조원 규모의 긴급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화학협회는 일부 석유수입사의 지방세 탈루 행위가 국내 석유 유통질서를 훼손한다며 수사와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건의서를 국세청, 관세청, 산업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납사) 가격 급등할 때는 정부에 수입에 대한 일시적인 무관세 적용을 촉구한 적도 있다.
한국해운협회는 수에즈 운하청이 한달 만에 최고 47%의 통항료를 추가로 인상하자 선사들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이를 재고해달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철강협회가 도움이 되어주지 않다 보니, 업계는 경쟁업체와도 불편한 만남을 계속해야만 한다. 만남 자체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문제 해결은 커녕 좋지 않은 이미지만 심어줄 뿐이다.
다소 늦었지만, 협회는 ‘맥락 지능’을 갖고 일해야 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회원사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게 업무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부디 협회가 이런 문제를 제기한 기자에 큰 상처를 받지 않고 발전적 방식으로 이 어려운 상황들을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