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는 담합 덩어리’라는 색안경
최근 철강업계가 또다시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가격 담합 행위로 제재를 당했다.공정위는 최근 스테인리스 선재 제품(강선)을 제조하는 4개사가 2020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판매가격 인상 담합을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34억 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해당업체 4개사가 스테인리스 강선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와이어로드) 비용이 인상되자 원자재의 단가인상 시점과 인상폭에 맞춰 제품 가격을 함께 올리고 서로 가격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들이 2020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총 7차례 모임 등을 통해 300계열 스테인리스 강선 판매가격 인상을 합의하여 1년 5개월 사이에 담합 이전보다 판매가격을 20~37% 올렸다고 보고 제재룰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가 경강선 가격담합(23년 10월), 와이어로프 구매 입찰담합(24년 12월)에 이어 철강 가공업체들의 담합을 추가로 적발한 사례라며, 원자재 비용 변동에 편승한 가격 담합을 엄중하게 제재했다고 밝혔다.공정거래는 우리 사회, 경제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철강업계의 특성, 특히 스테인리스 업계 특성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봤을 때 공정위의 제재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스테인리스를 포함한 철강 가공제품은 철광석, 원료탄, 철스크랩, 니켈 등 원료 가격 변동을 반영한 상공정 제조사의 원자재(와이어로드, 슬래브, 열연코일, 빌릿 등) 판매가격에 연동되어 움직인다. 거의 대부분 업체들에게 자의적인 판단과 결정이 작용하지 않는 구조이다. 더군다나 300계열 스테인리스의 경우, 주료 원료인 니켈 시세 변동에 매우 민감하게 움직인다.
실제로 담합행위가 있었다고 본 시기에 글로벌 니켈 가격은 꾸준히 상승했다. 2020년 9월 톤 당 1만4,866달러 수준이던 LME 니켈 현물가격은 2022년 2월에 2만4,178달러까지 올랐다. 니켈을 합금원료로 많이 사용하는 300계열 스테인리스 제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특히 스테인리스 밀들은 니켈 가격 변동을 가격 포뮬러에 반영하여 매월 가격을 조정한다. 가격 변동 공식이 적용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굳이 가격 담합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공정위가 담합이라고 의심하면 거의 대부분 제재받는 게 현실이다. 공정위가 철강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다. 1998년 당시 공정위 전윤철 위원장은 ‘철강업계는 담합 덩어리’라며 지속적인 감시와 개선을 언급한 바 있다. 사실 그 이후 철강재에 대한 공정위의 담합 조사와 시정조치는 끊임없이 계속됐고, 실제로 컬러강판, 아연도금강판, 관수철근 등의 담합이 적발돼 수천, 수백억 원의 과징금 부과와 법인 형사 고발이 진행됐다.
국내 철강제품은 원료에 대한 차별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일물일가(一物一價)’의 특성이 있다. 이러한 특수성을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철강업계도 당연히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등 공정거래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철저히 준비하여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규제 당국이 ‘철강업계는 담합 덩어리’라는 색안경을 끼고 산업을 바라보니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에 대해 “서슬이 퍼렇다”고 표현한다. 서슬은 쇠붙이로 만든 연장이나 유리조각 따위의 날카로운 부분을 말하는데, 매우 강하고 위협적인 상황을 표현할 때 쓰인다. 공정위의 서슬에 상호 신뢰와 동질감으로 충만했던 철강업계의 전통과 자긍심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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