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내 선재 시장은 최대 수요처인 자동차 산업의 회복에도 건설 경기가 부진하면서 전반적인 수요 증가폭을 키우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 피해로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침수되면서 선재 실적은 급감했으며 '힌남노 사태'와 더불어 지난해 화물연대본부의 두 차례 대규모 총파업으로 손실은 가중됐다.
2023년 시장 전망도 밝진 않다. 수요산업 회복 지연으로 상반기까진 시장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현실화됐고, 금리 인상 기조도 최소 1분기까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선재 산업도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자동차 생산이 늘고 선박 건조 물량이 늘면서 일부 수요 호조가 기대되지만, 주택 거래 위축 등 건설업 수요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 2022년 4분기 태풍 힌남노 피해로 직격탄
지난해 국내 선재 시장은 자동차 산업의 회복에도 태풍 힌남노 피해로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장 가동이 멈추는 등 직격탄을 맞으면서 4분기 실적이 급감했다.
본지가 한국철강협회 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 2022년 선재 생산은 248만7,000톤으로 전년 대비 32.8% 감소했다. 내수 판매(187만8,000톤)와 수출(67만9,000톤)도 각각 27.0%, 43.5% 급감했다. 수입은 132만7,000톤으로 전년 대비 3.5% 늘었다. 급감한 내수 판매에 수입재 시장점유율은 41.4%를 기록하며 지난 2013년 이후 다시 40%대로 올라서며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태풍 힌남노 피해 여파로 9월부터 생산이 8만톤대로 쪼그라든 영향이 컸다. 2022년 1~8월 월평균 생산이 약 27만톤임을 감안하면 최대 70% 가까이 급감한 모습이다. 9월 내수 판매도 10만톤 밑으로 떨어졌으며 수출도 2만톤대로 내려앉았다.
품목별로 살펴봐도 지난해 보통강선재 생산은 89만9,000톤으로 전년 대비 54.9% 급감했으며 내수(62만6,000톤), 수출(27만6,000톤)도 각각 48.1%, 51.1% 줄면서 모두 반토막을 기록했다. 특수강선재 생산도 지난해 생산이 158만8,000톤에 그치면서 전년 대비 6.9% 감소한 모습이다. 내수 판매는 전년 대비 8.3% 줄어든 125만2,000톤이며 특히 수출은 40만3,000톤으로 36.8% 급감했다.
올해 선재 내수 판매는 상반기까지 경기 침체 우려 속 자동차 산업의 미약한 회복으로 연간 1% 내외 회복이 예상된다. 국내 소재 수급난에 따른 수출 물량의 내수 전환이 상반기까지 지속되면서 수출 역시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같은 이유로 수입은 2분기까지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 수요산업, 자동차↑ 건설↓
선재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수요산업 동향이다. 선재 업계 실적은 최대 수요처인 자동차와 건설 산업 경기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전체 판매량에서 자동차 산업 60%, 건설 30%를 차지하나 기계류는 10% 내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는 자동차 산업은 내수 판매와 수출이 늘면서 생산도 소폭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차량용 반도체 수급의 회복과 더불어 누적 수요가 이연 되며 소폭 성장이 기대되나, 팬데믹 이후 각국 통화 정책의 긴축 전환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서 고물가·고금리 등 신규 수요를 일부 제한할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산업은 연초부터 발생한 △러-우 전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공급망 차질 △반도체 수급 부족 등 연이은 글로벌 악재로 생산 차질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한 국내외 자동차 수요 대비 공급이 감소, 하반기에 반도체 공급 개선으로 생산 증가함에 따라 내수 및 수출 동반 회복세를 보였다.
강남훈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올해 국내 시장은 2년 연속 감소의 기저효과로 인해 소폭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나, 경기 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자동차와 같은 내구재 소비 여력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자동차 내수 판매는 누적된 대기수요가 해소되고 전년도 저조한 실적의 기저효과로 플러스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나 경기 침체로 인한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와 고금리가 신규 수요를 제한해 전년 대비 1.5% 증가한 172만대로 전망했다.
수출은 글로벌 경기 침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법으로 인한 전기차 수출 차질, 러시아 수출 중단 등의 악재가 있지만, 국산차의 높은 상품성과 더불어 고환율 지속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며 3.1% 증가한 235만대로 예상했다. 생산 역시 견조한 국내외 수요를 바탕으로 각종 원자재 및 반도체 수급이 원활히 진행될 경우 1.4% 증가한 375만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건설 경기 악화에 올해 건설 수주액은 5년 만에 감소할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 수주는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증가해왔으나 올해 정부 SOC(사회기반시설) 예산이 10% 이상 감소하고 기준금리도 급등하는 등 시장 상황이 어려워 지난해 대비 7.5% 감소한 206조8,0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발주 부문별 공공수주는 3.1% 감소한 55조2,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민간의 경우 모든 공종에서 지난해 대비 9.0% 감소, 공종별로는 △토목 3.8% △주택 6.3% △비주택건축 수주 11.5% 등 각각 감소할 전망이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증가한 반도체 공장 수주 영향으로 공사가 증가해 일부 감소폭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주거용 건축투자는 금리 상승 영향으로 미분양이 증가해 횡보세, 토목투자는 정부 SOC 예산 10% 이상 감소한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부진할 것으로 바라봤다.
건산연 관계자는 "PF 시장 대출 연장 거부는 전형적인 유동성 위기로 대출이 막혀 공사 자금 확보가 어려운 건설사가 증가하고 연대보증으로 인한 부도 위험 또한 커지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위기 대응 및 대내외적 시장 신뢰 확보가 내년 국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물가 상승 압력을 자극하지 않도록 소규모 공사 위주로 발주를 늘리고 하반기에는 연기된 대형 사업 착공을 앞당겨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글로벌 철강, 하반기 中 시장 회복 '뇌관'
하반기부턴 글로벌 철강 시장이 회복세를 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우선 중국 시장 수요부터 소폭 개선될 전망이다. 대다수 해외 투자 기관들은 중국 경제의 회복과 반등이 2023년 글로벌 시장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중국 인프라 프로젝트가 늘고, 부동산 시장이 완만한 회복세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최근 2년간 중국 인프라 정책이 하반기에 집중 발표됐다는 점도 기대감을 키운다. 도로교통과 전기차, 데이터센터 관련 인프라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하반기 철강 수요엔 중국 인프라 정책이 반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의 공급망 정책도 기대 요인이다. 최근 IRA 사태에서 보듯 바이든 정부는 전통 인프라 투자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꾀하고 있다. 미 정부가 집중 투자하는 제조업, 에너지 인프라 부문은 철강 수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수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철강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미국과 유럽이 중국에 비우호적인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에게 반등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저가 철강재 유입이 제한되며 미국과 유럽의 철강 부족으로 인해 한국 철강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상승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시장 흐름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EU(유럽연합)은 내년 10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한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알루미늄 등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유럽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철강업계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철강업계는 매년 5~6조원 규모의 철강재를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이번 제도 시행으로 발생하는 국내 철강업계 추가비용은 연간 1억3,500만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각 기업의 탈탄소 정책에 대한 준비와 대응력이 '영업 레버리지'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그린스틸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탄소 공정라인 개발 투자 등 관련 생산 역량을 선제적으로 갖춘 업체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