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그린스틸(Green Steel) 생산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거세지면서 2022년 국내 직접환원철 수입도 급증했다. 정부도 최근 발등에 불 떨어진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키 위해 철강 산업에 저탄소 기술 개발을 위한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11월 직접환원철 수입은 총 55만1,00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0.4% 급증했다. 2022년 월평균 수입은 5만톤 수준이며 이를 연간 물량으로 집계한 총수입은 60만1,000톤으로 추산된다.
2021년 총수입 대비 약 35만톤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앞서 2021년 총수입은 24만9,000톤으로 전년 대비 53% 증가한 바 있다. 최근 5개년(2017~2021년) 평균 총수입이 33만7,000톤 수준임을 감안하면 2022년 실적은 상당한 물량이다.
연도별 총수입은 △2017년 41만7,000톤 △2018년 44만9,000톤 △2019년 40만6,000톤 △2020년 16만3,000톤 △2021년 24만9,000톤으로 나타났다.
국내로 들어오는 직접환원철 대부분은 말레이시아산으로 2022년 1~11월 54만8,000톤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45.1% 급증했다.
직접환원철은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방식 대비 수소(천연가스)를 연료로 철광석의 산소 분자를 제거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직접환원철은 결정체에 따라 크게 DRI(Direct Reduction Iron)와 HBI(Hot Briquetted Iron)로 나뉘는데 DRI는 철 함유량 90~95%의 분말상태로 불순물이 적어 주로 전기로에서 고급 철스크랩 대용으로 사용된다.
다만, 산화하기 쉬운 성질로 보관이나 운반이 용이하지 못한 단점이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열을 가해 덩어리로 굳힌 것이 HBI다.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스틸로의 생산방식 전환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직접환원철 수입은 앞으로도 점차 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수요 분야에서도 저탄소 제품의 요구가 더욱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철강사들은 화석연료 사용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속속 발표하면서 그린스틸을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철광석 공급사인 브라질 발레(Vale)도 최근 HBI 생산 및 공급망 확보를 위해 중동까지 나섰다. 중동은 상대적으로 값싼 산업용 전기료 덕에 DRI 주요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발레는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등 3개국 정부 및 고객사와 각국에 저탄소강 생산 등 '메가 허브(산업단지)' 개발의 공동 연구 진행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국내 기업에선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도 지난달 1일 호주 국회의사당에서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호주 총리를 만나 친환경 미래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포스코그룹은 태양광, 풍력 등 경쟁력 있는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그린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HBI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수소환원제철에 필수적인 수소 확보를 위해 호주를 주요 핵심 투자국으로 보고 있다"며 "기존의 철강 원료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수소, 그린스틸에 이르기까지 호주에서의 투자 분야와 규모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시드니에서 개최된 제43차 한국-호주 경제협력위원회에 한국측 위원장으로 참석해 개막식 기념사를 하고 있다.주요국들에서 강화되고 있는 탄소세 부과 등 친환경 정책은 그린스틸로의 전환을 더욱 빠르게 진행시킬 것으로 보인다. 가장 빠르게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 지역의 경우 더욱 그린 스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EU CBAM에 대응해 철강 산업을 저탄소 생산 구조로 전환하면서 경쟁력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2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외교부 등 정부 부처는 합동으로 CBAM 현황과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른바 '탄소 관세'인 CBAM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하는 경우,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해 일종의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오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은 역시나 철강이다. 철강은 상대적으로 대(對) EU 수출액이 크고, 탄소 배출이 많은 고로 공정의 비중도 높다. 지난해 한국의 업종별 EU 수출액은 CBAM 적용 대상 품목 가운데 철강이 43억달러로 가장 컸으며 이어 △알루미늄(5억달러) △비료(480만달러) △시멘트(140만달러)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법을 활용하고, 고로를 전기로로 전환하는 방법 등을 통해 철강업을 저탄소 생산 구조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 현 설비 조건에서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 개발을, 중·장기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 공정 설계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등 탄소 저감 기술 개발에 오는 2030년까지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 수소환원제철의 경우 2030년에 100만톤을 시범 생산하고 이후 300만톤까지 늘리기로 했다.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EU 탄소국경조정매커니즘(CBAM) 대응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