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에 이어 최근 대만 화롄 지진 등 정부가 갈수록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지진 피해를 대비하기 위해 내년까지 기존 공공시설물 내진율(내진성능 확보율)을 8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지난해 공공시설 내진율은 78.1%로 집계됐다.
다만 국내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 건축 내진율은 아직까지 20% 미만으로 관련 지원 정책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내 건축물 10채 중 8채가 내진성능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행정안전부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7회 재난안전 지진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우성우 행안부 지진방재정책과장은 '국가 지진방재 정책 방향'을 주제로 국내외 지진 발생 추이를 설명하며 내진 설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에선 연평균 72회의 지진이 발생하는데 특히 지난해에는 106회로 연평균보다 30회 이상 발생했다. 해외에선 지난해 2월 튀르키예·대지진 발생으로 최소 17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우성우 과장은 "튀르키예 지진 진앙지에서 166km 떨어진 소도시 '에르진'은 불법건축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어 지진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우리도 공공 건축물에 대해 5년간 총 3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내진보강 기본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2028년까지 추진되는 제3차 지진방재 종합계획에는 주요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행안부는 5년 주기로 지진방재 종합계획을 수립해 지진에 대응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35년까지 공공 내진율을 100%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우 과장은 "민간 건축물과 관련해서도 내진보장이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지진시설물 인증제를 운영하고 내진보강지원사업도 진행 중"이라며 "내진보강 시 제공하는 인센티브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민간 내진설계율은 여전히 20%를 밑돌면서 속도감 있는 지원이 절실하단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 대만 강진 발생시 80% '와르르'
지난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 전국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자료'를 보면 국내 내진설계대상 건축물 617만5,659동 가운데 내진성능 확보가 이뤄진 건축물은 단 101만4,185동으로 전체 16.4%에 그쳤다.
지자체별로 보면 전체 건축물의 내진성능 확보 수준이 20% 이상인 곳은 △경기 25.4% △세종 23.4% △울산 21.7% △인천 20.5% △서울 20.4% △대전 20.0% 등 6개 지역으로 특히 내진성능 확보 수준이 가장 낮은 곳은 전라남도가 10.6%에 불과했다.
2016년 포항·2017년 경주 지진을 연이어 겪은 경상북도도 전국 시도 중 두 번째로 낮은 11.7%를 기록했다.
이처럼 전체 건축물의 내진성능 확보가 미진한 데는 내진설계 의무대상 기준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 점이 꼽힌다.
우리나라는 1988년 이후 미국의 내진설계 기준을 도입해 의무대상으로 2015년 3층 이상, 2017년 2층 이상 등 건축법을 강화해오고 있지만, 대부분 신축건물에만 적용되고 기존건물에는 내진성능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다.
국내는 5층 이하 민간 중소규모 건물이 전체 건물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설계기준에 따라 내진설계기준도 6.0~6.5 수준으로 설정돼 있다.
즉 전국 건축물 10채 중 8채는 내진 성능이 없어 앞서 4월 대만과 같은 강진(7.2)이 발생하면 노후화 지역을 중심으로 대부분 건물은 무너진다는 얘기다.
■ 턱없는 정부지원
내진설계 적용 범위와 함께 정부 지원사업의 한계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행안부가 건축물 내진성능 확보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재작년부터 민간 건축물 내진 보강 지원사업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9월까지 공사비 지원을 신청하거나 지원한 실적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업은 민간건축물 중 최우선 보강이 필요한 문화·종교·관광숙박시설 등 연면적 1,000㎡ 이상 준(準)다중이용 건축물을 대상으로 건축주가 내진 보강 공사를 진행하면 내진 공사비 일부를 직접 지원해주는 내용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10%씩 총 공사비 20%를 지원한다.
다만 건축주들로서는 내진보강이 의무사항도 아니며 수억원이 소요되는 공사비 80% 이상을 직접 부담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전혀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한 셈이다.
용혜인 의원은 "공사비 지원 규모를 늘려도 내진보강 의무가 없는 이상 그 효과는 제한일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인 수준에서 내진설계 의무대상의 소급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내진성능평가 대상을 넓혀 내진설계 필요성을 강조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민간건축의 경우 공공건물과 달리 보강 강제 규정을 둘 수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보강비 확대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 내진설계만으로 안전한가?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건축물의 내진설계 의무화가 본격화됐다. 신축 건물과 주요 공공시설에 내진설계가 반영돼 꾸준히 내진율이 반영되고 있다.
다만 건설사들이 법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내진설계를 하고는 있지만 시공과정에서 내진강재 사용에는 소극적이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진강재는 내진 구조물에 최적화된 건축구조용 강재로 항복강도, 에너지 흡수 능력, 충격 인성이 보증되고 용접성능이 우수해 지진을 포함 바람 등 외부 에너지에 대한 충격을 보다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고성능 건축구조용 강재다.
2017년 포항 지진 발생 직후 급물살을 탔던 내진강재 사용 의무화 입법도 어느새 잊힌지 오래다. 내진강재 사용에 탄력이 붙지 않는 이유로는 역시나 관련법 부재가 꼽힌다.
건설사들은 건물을 지을 때 내진설계의 조건만 갖추면 내진강재 대신 일반강재를 사용해도 된다. 때문에 건설사들은 내진강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일반강재를 선택한다.
철강업계는 내진강재 사용을 외면하고 있는 주된 이유로 내진 관련 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건설업계는 내진강재를 사용할 경우 가격 뿐만 아니라 복잡해진 설계로 공사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기피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경우 내진강재 사용을 법에 명시했다. 1994년 노스리지 대지진 당시 콘크리트 구조물의 내진설계를 강화하며 건물이나 교각 등의 특정 부분에는 내진철근을 반드시 써야한다는 규정을 넣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도 건축 구조에 대한 강종 사용 규정을 두어 내진강재 사용이 보편화 돼있다.
한편, 국내에선 현대제철이 2017년 국내 최초로 내진용 건축 브랜드인 'H CORE(에이치코어)'를 출시하고 현재까지 내진강재 필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후 내화내진 복합강재(2019)와 고강도 형강(2020) 등 기술력이 더해진 고성능 제품들을 연달아 출시했고, 2022년 사용 범위와 대상 품목을 확대해 H CORE를 '프리미엄 건설용 강재'로 다시 선보였다.
H CORE는 고강도 내충격성, 내식성, 친환경성 등이 강점이란 평가를 받는다.
고강도 제품은 범용재 대비 최대 30% 높은 강도를 확보했다. 고연성 제품은 복합적인 외력에 유연하게 반응해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으며, 내충격 제품은 추운 곳에서 충격에도 깨지지 않고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을 갖췄다.
지난해에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H CORE STORE' 를 오픈해 건설분야 말초신경인 소규모 현장까지 H CORE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까지 건설용강재 종합 서비스인 'H CORE Biz-Platform'을 완성해 건설용강재 시장의 제품 선택·구매 패러다임 전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