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 시황 악화와 이에 따른 유통가격 하락으로 촉발된 경쟁사 코일센터 영입을 두고 국내 철강시장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지난 7월 하순 포스코는 열연강판과 후판 제품 직거래를 희망하는 국내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신규 가공센터를 모집한다고 알린 바 있다. 해당 모집에는 현대제철 열연 코일센터 A사가 서류 심사에 통과하고 8월 하순 현장 실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은 소속 코일센터를 두고 경쟁사의 영입 제안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선택은 해당 코일센터의 몫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이와 함께 소속 코일센터를 향한 경쟁사의 기습적인 영입 제안 등 철강 생태계를 해칠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면서, 최악의 경우 신뢰를 잃은 상대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한국철강협회 탈퇴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신규 가공센터 모집과 관련해 포스코 관계자는 “9월 말 최종 실사와 결과 발표 이전까지 따로 이야기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 발단은 결국 국내 유통가격
철강업계는 이번 사건의 시작을 시중 열연강판 가격 약세로부터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올해 국내 철강시장은 저가 수입재 유입과 함께 내수 시황 부진으로 가격 하락을 나타냈다. 국산 열연강판 유통가격도 1분기에는 톤당 80만 원 후반대를 형성했으나 6월에 이르러 80만 원 초반선까지 하락했다.
사진은 포스코 열연코일. 포스코 제공.지난 5월~6월 한국으로 제시된 중국 철강업계의 한국향 열연강판 오퍼(Offer)가격은 톤당 500달러 중반대를 형성한 바 있다. 당시 국내 철강 가격은 시황 악화로 하락을 나타냈지만, 중국 오퍼가격은 중국 당국의 불법적인 저가 수출 지양 방침 등의 영향으로 예상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오퍼 이후 6월~7월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량은 각각 7만2천 톤과 5만5천 톤으로 15만 톤 안팎을 기록했던 3월~5월 수입 대비 크게 줄었다. 이에 제조업계는 수입재 변수가 줄어들자, 계절적 비수기 진입 이전 시중 유통가격을 끌어올리고 시장 질서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알린 바 있다.
다만 중국산 물동량 저하에도 불구하고 수입대응재(GS400 강종) 유통가격이 상대적 저가를 유지하자, 정품을 취급하는 현대제철 소속 코일센터 A사도 이에 대응하며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게 된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의 의도와 시장의 흐름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열연강판 정품이 시중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풀리자, 유통시장 또한 충격에 휩싸였다. 시중 유통가격 약세의 책임은 결국 현대제철로 넘어간 모습을 나타냈다. 이에 현대제철은 소속 코일센터 관리 책임과 열연강판 시장 질서, 유통가격 수성 등을 위한 자정 작용으로 해당 코일센터에 대해 제품 출하 관련 제한을 시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 포스코의 신규 가공센터 모집
7월 25일 포스코는 국내 중소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열연강판 및 후판 관련 가공센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후 포스코의 신규 가공센터 모집 대상에 현대제철 소속 A사가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현대제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 관계자는 “시장 질서 확립과 자정 작용 노력을 하는 중에 경쟁사의 코일센터 영입은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비록 경쟁사이지만, 이번 행동은 동종업계의 동료의식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포스코는 신규 가공센터 확보에 전념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현대제철 또한 소속 코일센터 A사가 기존 조건 대비 개선된 환경을 제공받는다면 막을 명분은 없는 상황이다.
사진은 현대제철 열연코일. 현대제철 제공.▣ 수입 방어해야 하는데…파이 싸움만 치열해질까 우려
국내 제조업계의 열연강판 생산량은 연간 약 3,600만 톤 수준이다. 지난해 열연강판 외판 시장은 본지 집계 기준 약 660만 톤이다. 이 가운데 포스코의 점유율은 80%에 가깝다.
현대제철은 이번 코일센터 모집을 계기로 국내 시장 점유율 싸움이 격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열연강판 생산 규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유통 및 가공시장에서 국내 철강사의 경쟁은 가격 하락과 이에 따른 시황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열연강판과 관련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는 와중에 반덤핑(AD) 등 무역 장벽이 전무한 국내 시장 상황에서 두 철강사의 파이 싸움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알렸다.
다만 현대제철은 향후 자사 소속 코일센터에 대한 포스코의 영입 향방에 따라 유통시장 가격 대응과 한국철강협회 탈퇴, 경쟁사 코일센터 영입 등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철강업종 동료의식이 상실된 상황에서 같은 협회의 회원사라는 입장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한국철강협회 탈퇴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제철 관계자는 열연강판 외판 시장 물량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가격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회사 관계자는 “현대제철도 판매 활로를 다각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라며 “경쟁사의 코일센터도 영입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