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업계가 친환경 철강 생산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ESG 경영을 필두로 탄소 저감을 위한 사업 구조 및 체질 개선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국내 제강사들도 수소환원제철 대전환 이전 탄소 저감을 위해 전기로를 신설하거나 전기로 활용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탈탄소 과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철스크랩과 직접환원철(DRI)을 투입해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 공정은 원료탄(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공법 대비 탄소 배출을 최대 75%까지 줄일 수 있어 현재로선 탄소 저감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철스크랩과 DRI가 전기로에서 주원료로 쓰이는 만큼 글로벌 수요 또한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국내에선 관련 철원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철스크랩 시장에서 수입 물량의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특히 천연가스 공급 난제와 함께 DRI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 철강 주요국들이 앞다퉈 고로를 전기로 설비로 대체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유럽연합(EU)이 비(非)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철스크랩 수출 제한 규정을 채택하는 등 저탄소 원료를 둘러싼 이른바 '총성 없는 전쟁'이 본격화된 것.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과 대만, 뉴질랜드 역시 덩달아 전기로 전환 생산에 나서면서 국내에서도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필요성이 연일 대두되는 이유다.
■ '포현동' 탄소저감 목표 한뜻
포스코가 최근 탄소 저감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며 탄소중립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광양제철소에 전기로가 도입되기 전까지 고객사의 저탄소 철강 수요 대응에 적극 나선다는 복안이다.
포스코가 출시한 'Greenate certified steel'은 탄소감축량 배분형(Mass Balance) 제품으로 저탄소 생산공정 도입·저탄소 철원 사용 등을 통해 감축한 탄소 배출량을 배분 받아 기존 탄소 배출량을 저감한 특정 제품을 의미한다. 해당 제품을 구매한 고객사는 그에 상당하는 탄소 배출량을 저감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Greenate certified steel'은 포스코그룹이 지난해 11월 론칭한 2050 탄소중립 마스터 브랜드 '그리닛(Greenate)'에 착안해 명명됐다.
그리닛은 △이오토포스(e Autopos) △이노빌트(INNOVILT) △그린어블(Greenable)로 대표되는 3대 친환경 철강 브랜드 제품은 물론 저탄소 철강 및 친환경 이차전지 소재 생산을 위한 포스코그룹의 모든 노력과 제품을 포괄한다.
이미 유럽·일본 등 글로벌 철강사들은 탄소배출량 감축 실적을 특정 강재에 배분하는 Mass Balance 방식을 2021년부터 도입해 왔다. 국내에서 해당 방식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포스코는 기존 고로 기반 저탄소 조업 기술을 향상시키고 전기로 신설을 통해 오는 2026년부터는 용강을 직접 생산하거나 고로에서 생산된 용선과의 합탕 방식을 통해 탄소배출을 감축할 예정이다. 이어 2030년에는 상용화 기술 개발을 완료해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생산 설비를 전환해나갈 계획을 밝혔다.
고로와 전기로 기술력을 동시에 보유한 현대제철도 저탄소 제품 인증을 획득하는 등 탄소감축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최근 환경부로부터 H형강의 저탄소 제품 인증(EPD·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을 받았다.
이번 인증으로 현대제철은 총 13개의 EPD 인증 제품군을 확보한 셈이다. 회사 측은 이를 계기로 앞으로도 친환경 전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앞서 현대제철은 오는 2030년까지 전기로 '하이큐브(Hy-cube)' 구축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동국홀딩스·동국제강·동국씨엠 3개사로 분할 출범한 동국제강그룹도 '하이퍼 전기로'를 내세우며 친환경 철강사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탄소배출 저감형 하이퍼 전기로 공정 연구로 친환경 철강 전환을 선도한다는 목표다.
하이퍼 전기로의 핵심은 속도와 에너지 효율로 조업 속도를 높일수록 소비 전력을 절감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동국제강은 철스크랩 예열 및 장입 방식 개선 등으로 에코아크 전기로 전력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효율을 향상해 하이퍼 전기로 기술을 완성할 계획이다.
■ 여전히 불안한 자급도 '견조세vs정체'
관건은 역시나 원재료 수급이다. 특히 철스크랩은 채굴을 통한 생산 가능 자원이 아니라 재활용 자원인 측면에서 글로벌 공급량이 제한적이다.
철스크랩 공급 부족이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전기로 투자에 앞서 만반의 대응책을 수립해 탈탄소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반면 국내 철스크랩 시장은 아직까지 수급 균형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철스크랩 자급률{(국내 구매+자가 발생)/소비}은 84.9%로 3년 연속 85%대를 유지했다.
지난해 총수요 2,600만톤 가운데 국내 공급사로부터 구매한 양은 1,700만톤이며 제강사 내부에서 회수한 자가 발생은 500만톤이다.
나머지 수요 400만톤은 일본을 주축으로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수입으로 충당했다. 즉, 지속적으로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앞서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70%대에 머물던 자급도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2020년부터 85.1%로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85%대를 이어가면서 '견조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일각에선 '정체'란 시각도 나온다.
전기로가 고로 제철소들의 탄소 저감 대응 방안으로 꼽힌 게 국내로 국한된 것은 아니며 철스크랩 수요가 세계적으로 늘면서 자원 경쟁 영향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우리나라와 가까운 세계 철강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에서도 전기로 조강 확대를 위해 2025년까지 철스크랩 사용량을 2020년 대비 23%(6,000만톤) 확대시키는 산업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공급망 확보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탈탄소를 위한 비용이 갈수록 불어나는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량 수입 직접환원철, 루트 다방면 확대 必
탄소중립 바람과 함께 철스크랩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저탄소 원료인 직접환원철도 다시 부상하고 있는 모양새다.
철광석의 산소 분자를 제거하기 위해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방식 대비 직접환원철은 천연가스로 직접 환원함으로써 이산화탄소 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직접환원철은 결정체에 따라 크게 DRI(Direct Reduction Iron)와 HBI(Hot Briquetted Iron)로 나뉜다.
DRI는 철 함유량 90~95%의 분말상태로 불순물이 적어 주로 전기로에서 고급 철스크랩 대용으로 사용된다.
다만, 분말 상태인 DRI는 수분과 산화하기 쉬운 성질로 보관이나 운반이 용이하지 못한 단점이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열을 가해 덩어리로 굳힌 것이 HBI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직접환원철 총수입은 54만8,000톤으로 전년 대비 119.9% 늘면서 2배 이상 급증했다.
최근 5개년(2017~2021년) 평균 수입량이 약 34만톤 수준임을 고려하면 지난해 최소 20만톤 이상 늘어난 셈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천연가스 보유국인 말레이시아나 러시아, 중동 등지에서 직접환원철을 전량 수입해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로 들어오는 직접환원철 대부분은 말레이시아산으로 지난해 총 54만5,000톤을 기록해 3배 가까이 늘어난 모습이다.
지난해 철스크랩 수입 규모(400만톤)와 비교 시 비중은 15% 내외에 불과하나 고급 철스크랩 대체재로 평가되는 만큼 향후 수입 루트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