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철강금속신문DB
제조원가 상승과 중국산 쓰나미에 국내 석도강판업체들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중국산 석도강판 수입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함과 동시에 국내 잡관 시장 수요를 앗아갔다. 석도업계의 작년 영업이익률은 결국 바닥을 터치했다. 제조 비용 상승에도 수입산에 치열한 가격 대응으로 응수한 영향이 컸던 탓이다. 올해도 값싼 중국산 공급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석도강판의 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편집자주>
◇ 석도강판 영업이익률은 왜 바닥일까
본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석도강판 제조사 2곳인 TCC스틸과 신화다이나믹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119억 원이었다. 이 기간 매출은 7,307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은 1.6%을 기록했다. 1,000원어치 물건을 팔면 16원이 남았다는 얘기다.
석도업계의 저조한 이익률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업계는 지난 2년간 약 5~7%의 연간 영업이익률을 나타냈지만 지난해에 이르러서는 1%대를 기록하면서 급락을 겪었다. 또 2021년 매출액은 5,126억원으로 2023년(7,307억원)을 한참 밑돌았음에도 영업이익률이 5.6%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
업계는 석도강판업계의 낮은 이익률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석도강판업계가 공급자가 극소수로 제한된 캡티브(Captive)마켓인데다 경기변동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석도강판업계의 저조한 이익률 원인에는 원가비용 상승이 가장 먼저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TCC스틸과 신화다이나믹스의 경우 국내 유일의 석도원판(BP) 제조사를 통해 100% 전량 공급받고 있다”라며 “재작년부터 국내 원판 공급 가격이 원악 높게 형성되면서 원가관리는 물론 수입재를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석도강판 제조사들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TCC스틸과 신화다이나믹스 모두 최근 2년간 매출원가는 크게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TCC스틸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4,573억 원과 4,421억 원의 매출원가를 기록했다. 2013~2020년까지 매출원가가 평균 3,234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약 1,000억 원 정도의 지출이 더 발생한 셈이다.
신화다이나믹스의 매출원가 역시 올랐다. 2020년까지 평균 633억원의 기록했던 매출원가는 최근 2년간 1,077억 원과 1,015억 원으로 뛰었다. 평년과 비교해서는 400억원 가량의 제조 원가에서 부담이 생겼다.
◇ 금(金)석도강판에 수입 급증
작년부터 석도강판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중국산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석도강판이 ‘금(金)강판’으로 불릴 정도로 가격 부담이 커지자 평소에는 잘 찾지 않던 수입산으로까지 눈길을 돌리는 철강 구매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석도강판의 내수 판매는 1만5,990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1% 감소한 반면 중국산 석도강판 수입은 무려 57.5% 급증했다.
중국산 수입은 올해 1~3월 1만5,784톤으로 전년보다 39.3% 증가했다. 국내 석도강판 판매에서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20%에서 올해 27%로 1배 늘었다. 지지난해 12%과 비교해서는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수입 폭증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산 석도강판보다 저렴하고, 원재료비 상쇄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대신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면 원재료비를 2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며 “환율 등을 고려하더라도, 국산을 사용하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적용량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석도강판은 탄산음료, 커피, 통조림, 분유 등 식관을 비롯해 에어로졸, 페인트, 오일통 등을 감싸는데 폭넓게 쓰인다. 식료품관을 제외한 기타 제품은 수입산으로 대체가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관의 경우 강도는 물론 내식성, 내화학성, 인쇄성 등을 모두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제조사가 생산한 것 중에서도 A급 제품만을 공급해야 하는 반면 4L관과 18L관 등 산업 용기를 담는 잡관과 병뚜껑을 만드는 왕관 시장의 경우는 중국산과 국산 혼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종 제품은 패커업체로부터 만들어진 후 엔드유저로 공급되는 구조”라며 “사업자 선정과 같은 공개입찰에서 중국산 적용 유무 등을 확인하는 것은 요식행위일 뿐 제품 불량이 생기지 않는 이상 소재 원산지에 대해서는 서로 묵인하는 것이 불문율이다”라고 폭로했다.
◇‘수입산 강세’…국산 석도업계에 위기 될까
중국 수입량이 늘어나는 점은 국산 석도업계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아직 식관의 대부분은 국산 제품을 사용하지만, 잡관 등 시장은 이미 중국산에 점령을 당한 상태다. 중국산 제품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점유율을 높일수록, 국산제품이 경쟁력을 잃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는 ‘중국산 석도강판 강세’ 트렌드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때, 국내 철강제품 중 가장 먼저 수입산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석도강판 생산은 작년을 기점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22년(58만9,212톤)과 2023년(56만5,506톤) 석도강판 생산량은 해마다 한 자릿수씩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생산만 보더라도 14년래 가장 저조한 실적이었다.
업계는 중국산 석도강판이 국산제품보다 저렴하고, 잡관 시장을 중심으로 ‘중국산의 기술 수준이 많이 좋아졌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 같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과 중국산 제품의 화학성분 등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고, 평활도,녹 반점, 내부 코어, 코팅 등에서 중국산 품질이 제고되면서 오히려 수입산 선호도가 올라가는 상황”이라며 “국산 석도강판 소비를 늘려야 하는데 제품 경쟁력마저 잃은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중국산 제품을 막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게 석도업계의 중론이다. 공정 효율화와 수출을 확대하더라도 원판 공급비용은 통제할 수 없어 원가부담만 가중되고 있어서다. 원판 공급사는 올해 2분기부터 톤당 7만원의 추가 인상안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국내 한 곳에서만 조달해왔지만 최근 글로벌 구매 역량을 키웠어야했다는 내부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며 “독점 원판 공급사가 국내 석도강판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해 가격 조정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국내 석도강판 산업은 머지않아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