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양반과 머슴의 신분이 뚜렷했다. 비교적 가문이 좋은 양반은 많은 머슴을 거느리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당연히 많은 농토를 소지했기에 머슴들이 주로 하는 일은 농사였다. 그 농사일로 머슴들의 삶은 항상 고단했다. 사시사철 쉬는 날 없이 힘든 노동이 계속됐다. 양반에 예속된 신분이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에게 노동의 의미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노동에서 가치를 찾는 것은 무의미했다. 오로지 양반을 위해 존재하는 피지배 신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매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머슴들에게도 쉬는 날이 있었다. 일 년에 하루 이틀 정도였다. 그날은 바로 음력 2월 1일이다. 이날은 삭일(朔日)이라 하여 나라에서 농사에 힘쓸 것을 특별히 당부하는 날이었다. 한 해 농사를 위해 온갖 준비를 하던 시기였는데 이날만큼은 머슴들에게도 편안한 휴식이 주어졌다. 주인은 이날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해 머슴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술도 마음껏 마시게 했다. 이 머슴의 날에는 자기들끼리 모여 풍물을 치고 노래와 춤을 추며 그들만의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이 음력 2월 1일은 오늘날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노동의 가치를 따지지 않던 그 시대에도 머슴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고자 기일을 정해 대접한 것은 참으로 현명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얽히고설킨 신분관계이지만 주인이 할 도리는 다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 같은 풍습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는 그대로이다. 그리고 사용자는 근로자를 위해 다양한 복지정책으로 도리를 다하려 애쓴다. 다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은 아쉬운 부분이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날은 법정 공휴일이 아닌 법정 휴일이다. 법정 공휴일은 규정에 따라 보장되는 휴일로써 달력에 빨간 표시를 한 날을 말한다. 이날은 유급휴가를 부여한다. 법정 휴일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보장되는 휴일로 토요일이나 근로자의 날 등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날에 근무했다면 근무시간의 1.5배 또는 2배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근로자의 날에도 쉴 수 없는 근로자가 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사업 규모 5인 미만인 사업장 근로자를 말한다. 이날 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사업장이 수없이 많다. 이에 따라 근로자의 날 이들이 받을 상대적 박탈감은 크다. 같은 근로자인데 한쪽에서는 쉬고, 한쪽에서 일을 해야 하니 말이다. 위화감과 차별화가 문제로 지적된다. 출근은 사업주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근로자의 날을 법정 공휴일로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그러나 이것은 먹고사는 문제로 따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 사업장이다. 식당이나 카페 등 소규모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만약 이날을 법정공휴일로 정한다면 사업주는 큰 타격을 입는다. 식당이나 카페 등은 사업 특성상 공휴일에도 문을 열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 공휴일이 되면 1,5배의 가산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휴업해도 손해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마치 ‘뜨거운 감자’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두고 모든 근로자가 평등하지 않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근로자의 날이 평등하지 않은 이유는 출근하는 근로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로조건의 개선이라는 근본 취지에도 배치된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일견 이해가 간다.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업종은 휴일이 대목이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이것을 악용하는 업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예외 규정을 노동 착취 도구로 삼는 업체가 전국에는 아직 많이 있다. 이것은 사용자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장님 나빠요”라는 어느 개그 프로그램의 대사가 이것을 대별(大別) 한다. 생일날 일을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은 머슴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술도 양껏 마시게 했던 옛날 양반들의 배려심이 지금은 필요하다.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근로자의 날이 불평등과 박탈감을 느끼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장님의 속 갚은 배려만이 이 같은 상황을 발생하지 않게 한다. 그래야 “사장님 좋아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노동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