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싼 중국 후판, 알고 보니 이란산 섞였다?”…조선·건설기계 수출 신뢰 직격탄 우려(후판 속 숨은 제재 폭탄②)
중국산 후판이 유독 저렴했던 배경에 이란산 슬래브 투입 의혹이 겹쳐지고 있다.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국제 제재 리스크가 얽힌 구조라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중국산 후판은 조선뿐 아니라 건설·기계·플랜트 등 다양한 산업에서 쓰이고 있다. 업계는 “이 물량이 대미 수출 제품에 투입될 경우, 제재 리스크가 전방위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값싼 후판의 비밀
중국산 후판은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국제가격보다 최대 40% 이상 낮은 가격에 공급돼왔다. 한국 정부가 2025년 8월, 중국산 후판에 최대 34.1%의 반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 구조는 비슷한데도 중국산 후판이 과도하게 낮은 값에 공급돼 왔다”며 “무역위의 판정도 결국 이 점을 문제 삼은 것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이 가격 차의 결정적 배경 중 하나로 이란산 슬래브 투입을 지목한다. 2022~2024년 동안 중국은 매년 70만~110만 톤의 이란산 반제품을 공식 수입했으며, 오만·인도를 경유한 ‘라벨 세탁’까지 겹쳐 공급망에 흡수됐다.
중국 내 중견 재압연사들은 이러한 저가 원료를 후판·열연강판 생산라인에 적극 투입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한국 산업계가 이러한 중국산 후판에 크게 기댄다는 점이다. 한국은 매년 100만 톤 이상 중국산 후판을 들여왔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2023년 130만 톤, 2024년 138만 톤이 수입됐다. 이는 전체 후판 수요의 약 20%에 해당한다.
조선업계 의존도는 특히 높다. 연간 138만 톤의 후판과 함께 2024년 기준 국내 조선소가 직접 들여온 중국산 철구조물은 약 44만 톤을 나타냈다. 세부적으로는 대형 조선 3사가 약 20%를 중국산으로 채웠고, 중소형 조선소는 40~50%까지 중국산 비중이 치솟는 사례도 있다.
단순 후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가공된 조립 블록을 통째로 들여오는 사례가 늘면서 체감 의존도는 통계보다 훨씬 높다는 평가다.
이란산 슬래브 의혹은 단순 범용 후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소로트(lot) 단위로 조달이 어려운 고장력강 후판에서 중국산의 저가 구조가 두드러진다. 올해 중국산 고장력강 후판의 평균 수입단가는 톤당 650~950달러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일본산은 1,400~2,300달러, 유럽산은 1,500~2,300달러에 달했다. 세부 엑스트라와 강종 등을 고려해도 가격 격차가 극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최소 두 배 이상 벌어진 가격 격차는 업계 선택을 바꿔놓았다. 국내 특장차·건설기계 업체들은 “일본·유럽산으로는 원가를 맞출 수 없다”며 중국산 고장력강 후판을 대거 활용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만 보면 선택지가 없다. 하지만 이란산 슬래브를 활용한 후판이 섞였다면 단순한 원가 절감 문제가 아니라 국제 신뢰도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수출 신뢰를 흔드는 뇌관
문제는 이 흐름이 단순한 가격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2025년 현재 이란산 원유·석유화학·철강(슬래브·빌렛 포함)·비철금속 등 주요 수출품 전반을 제재 품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특히 제3국을 통한 우회 거래까지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에 포함하며, 실제로 중국·터키·UAE 법인 다수가 올해 신규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한편 현재 중국산 반덤핑 최종 판정에도 불구하고 조선용 선급재는 꾸준히 저가로 유입되고 있다. 보세창고를 거쳐 통관 시점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풀리면서, 8월 기준 수입단가는 톤당 90만 원을 밑돌았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가 부과됐음에도 가격 메리트가 워낙 크고, 보세창고 활용까지 겹치면서 조달 구조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국내 조선업계가 중국산 후판을 활용한 선박을 미국·유럽에 인도할 경우, 제재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에서 이점을 본 중국산 후판이 사실상 이란산 원료로 만들어졌다면, 이는 곧바로 제재 문제로 이어진다”며 “단순한 덤핑 논란이 아니라 글로벌 수출시장의 신뢰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이 추진 중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와 맞물릴 경우 파장은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스가는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한국 기술과 자본이 투입되는 대규모 산업 협력 구상으로, 공급망 투명성과 신뢰성이 전제돼야 한다.
이란산 슬래브 의혹이 현실화할 경우, 마스가 프로젝트 자체가 신뢰 논란에 휘말려 양국 조선 협력의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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