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英 정부의 철강업체 국유화가 던지는 질문
최근 영국 정부가 브리티시스틸을 국유화했다. 이를 단순히 한 기업의 경영난을 정부가 떠안은 사건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이번 결정은 철강산업이 여전히 한 나라 제조업의 뿌리이자, 공급망 안보와 산업 주권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 산업임을 다시 확인시킨 사례다.
브리티시스틸의 스컨소프 공장은 영국에서 철광석을 원료로 쇳물을 만드는 마지막 설비다. 해당 용광로가 멈추면 영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사실상 자국 내 1차 제철 능력을 상실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브리티시스틸은 2020년 중국 징예그룹에 인수됐고, 스컨소프 제철소가 하루에 약 70만 파운드의 손실을 내며 부실이 커지자 용광로를 폐쇄하고 전기로로 전환하려고 했다. 막대한 손실뿐 아니라 고탄소 고로 공정의 환경 비용, 보호무역에 따른 관세 부담, 전기로 전환을 둘러싼 정부 지원 협상 결렬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해당 공장의 용광로 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자국 내 핵심 제철 역량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직접 개입해 국유화했다. 막대한 재정 부담에도 국유화를 선택한 배경에는 고숙련 일자리 보호뿐 아니라 주요 산업에 필요한 소재 공급망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국유화가 철강산업의 해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국유화는 산업정책의 성공 모델이라기보다, 핵심 제조 역량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을 때 선택하는 최후의 방어선에 가깝다. 여기서 한국이 얻어야 할 교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 철강산업은 영국과 달리 세계적 수준의 일관제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방산 등 국내 제조업 전반을 떠받쳐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반이 앞으로도 자동적으로 유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공급과잉, 저가 수입재 확산, 국내 건설 경기 둔화, 미국과 EU의 보호무역 강화, 탄소규제 확대가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철강산업은 이제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품목과 설비를 같은 방식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범용재 중심의 양적 경쟁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반면 전기강판, 특수강, 고급 후판, 조선·자동차·방산용 고부가 강재는 국가 제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들 분야는 단순한 기업 차원의 투자를 넘어 산업 생태계 차원의 육성이 필요하다.
저탄소 전환 역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EU CBAM과 글로벌 수요기업의 탄소 감축 요구는 철강업계의 경쟁 기준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는 얼마나 싸게 많이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낮은 탄소로 고품질 철강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고도화, 고급 철스크랩 확보, 저탄소 철강 인증제와 같은 과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숙제가 아니다.
통상 대응도 중요하다. 미국과 EU의 철강 보호조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철강업계는 시장 접근성 확보와 불공정 수입 대응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통상 협상과 무역구제 조치를 정교하게 운용하고, 기업은 고부가 제품 비중을 높이며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브리티시스틸 국유화는 먼 나라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철강산업을 잃은 뒤 다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한국 철강산업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범용재 중심의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고부가·저탄소·경제안보형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위기가 현실화된 뒤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오기 전에 체질을 바꾸는 것이 지금 한국 철강산업에 필요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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