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그린스틸 전환, 경쟁력·탈탄소 사이 선 유럽

대장간 2026-07-29

유럽 그린스틸 시장의 전망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큰 방향은 분명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수요 부진과 전통 철강재 가격 약세, 제한적인 거래량, 그리고 정책 불확실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그린스틸이 미래 철강산업의 핵심 축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지만 언제, 어떤 속도로, 어느 정도의 비용을 감내하며 전환할 것인지를 두고 시장의 계산은 엇갈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럽 철강업계가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린스틸 거래는 아직 대규모 공개시장보다는 양자 간 장기 구매계약 형태에 머물러 있다. 수요가들은 탄소배출 감축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가격 부담을 외면하기 어렵다. 특히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약한 상황에서는 친환경 프리미엄을 얼마나 지불할 수 있는지가 시장 확대의 변수가 되고 있다.

패스트마켓이 평가한 저탄소 프리미엄은 탄소배출량이 톤당 0.8톤 미만의 그린스틸이 5월 말 기준 톤 당 135유로 수준으로, 6개월 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배출 저감 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톤 당 1.4~1.8톤 수준의 저배출 철강재 프리미엄은 이전 전망 대비 50% 떨어졌다. 이는 시장이 단순한 ‘저탄소’ 명칭보다 실제 감축 효과가 큰 제품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원가 구조다. 유럽의 저탄소 전환 속도는 결국 탄소배출권과 원료 가격에 의해 좌우된다. EU 배출권거래제도에서 탄소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 고로-전로강 생산비용은 크게 높아진다. 반대로 탄소가격 상승이 완만하게 조정된다면 고로 경쟁력은 예상보다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유럽집행위원회의 최근 EU 탄소배출권제도 검토 방향도 이러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탄소비용을 급격히 높여 탈탄소화를 압박하기보다는 산업 경쟁력과 전환 속도를 함께 고려하는 점진적 접근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탄소가격 상승이 제한되면 가장 친환경적인 설비일수록 가동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책 완화가 단기 경쟁력에 도움이 되더라도, 장기적인 저탄소 전환 투자에는 제동을 걸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프리미엄 시장의 존속 여부마저 정책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유럽 그린스틸 시장의 핵심 쟁점은 이제 ‘전환 여부’가 아니라 ‘전환 속도와 비용 분담’으로 읽힌다. 철강사는 경쟁력 훼손을 우려하고, 정책당국은 탈탄소 목표를 포기할 수 없으며, 수요산업은 가격 부담을 고민한다. 이 세 축이 균형을 찾지 못하면 그린스틸 시장은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제한적 틈새시장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한국 철강업계에게도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 유럽은 탄소규제와 그린스틸 시장 형성에서 가장 앞서 있는 지역이다. 유럽의 정책 조정은 글로벌 철강 가격, 저탄소 제품 기준, 수출 경쟁력, CBAM 대응 전략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탄소비용이 실제 철강 원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저탄소 제품 프리미엄이 시장에서 얼마나 인정받는지는 국내 철강사들에게도 중요한 참고점이 될 것이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분명하지만 그 길이 직선만은 아니다. 유럽 그린스틸 시장의 갈라진 전망은 철강산업 전환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강한 탄소가격은 전환을 앞당기지만 산업 부담을 키우고, 완화된 탄소가격은 경쟁력을 지키지만 전환 속도를 늦춘다. 결국 관건은 어느 한쪽의 선택이 아니라,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저탄소 투자를 지속하게 만드는 정책 설계다.

유럽 철강산업의 다음 10년은 탄소비용이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글로벌 철강업계 전체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예고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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