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K-GX, 규제 아닌 ‘산업전환’ 전략이어야 한다
오는 6월 정부의 K-GX(한국형 녹색전환) 전략 발표를 앞두고 산업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특히 철강·금속을 포함한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은 이번 정책의 방향에 따라 미래 경쟁력이 좌우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2일 한국경제인협회와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이 공동 개최한 ‘신성장동력 K-GX 전략 세미나’는 이러한 산업계의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K-GX가 단순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아니라 산업 전환과 구조 고도화를 이끄는 국가 전략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유럽연합(EU)은 청정산업딜을 통해 탈탄소를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전환하고 있고, 일본 역시 GX 전략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만이 ‘규제 중심 접근’에 머문다면 결과는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우리나라 제조업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수출 의존도가 큰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철강·비철금속 산업은 탄소집약도가 높은 대표적인 분야이자 국가 기간산업이다. 이런 산업에 녹색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문제는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다. 비용 부담만을 강요하는 방식이라면 산업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반대로 시장과 기술, 투자 여건을 함께 설계한다면 새로운 성장 기회로 작동할 수 있다.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현실적인 과제로 제시된 것은 ‘전력망 확충’이다. 무탄소 전력 확보 없이는 어떤 산업 전환도 불가능하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 활용 논의는 이미 충분히 진행돼 왔으나, 정작 산업 현장까지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송·배전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대용량 전력을 필요로 하는 철강 산업의 경우 전력 품질과 안정성은 생산성과 직결되는 요소다.저탄소 제품 시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저탄소 철강을 비롯한 친환경 제품은 생산비용이 높은 구조여서 기술이 뒷받침되더라도 시장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전환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결국 관건은 가격 신호다. 공공조달, 탄소금융, 인증체계 등을 통해 저탄소 제품이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아울러 무탄소 수소의 경제적 공급, 지역별 산업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전략, AI와 데이터 기반의 운영 혁신 등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특히 지역 기반 전략은 수도권 중심의 정책 접근을 넘어 산업 클러스터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철강 산업이 밀집된 포항·광양, 석유화학 중심의 울산 등은 각기 다른 전환 모델이 필요하다.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역시 중요하다. 장기 투자와 설비 전환이 필요한 분야일수록 안정적인 정책 시그널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책이 자주 바뀌거나 단기 목표에 치우친다면 기업은 투자에 나설 수 없다. 그래서 K-GX 전략은 최소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 로드맵과 구체적인 이행 수단을 제시해야 한다.민간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정책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실행은 결국 기업이 담당한다. 기후테크와 공정 혁신, 공급망 재편 등은 민간 역량이 핵심이다. 특히 철강산업은 이미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확대 등 다양한 전환 기술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이러한 시도를 제약하기보다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결국 K-GX의 성패는 ‘전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규제로 접근하면 비용이 되고, 전략으로 접근하면 기회가 된다. 철강·금속 산업은 오랜 기간 한국 경제의 근간을 지탱해 왔다. 이제 그 역할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녹색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산업이 위축될 것인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인지는 정책과 시장, 그리고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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