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무역의 험로와 수출 구조의 회색지대
얼마전 관세청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컬러강판 불법 유럽 수출 사례를 적발하여 관련 업체 2곳을 검찰에 송치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규정 위반을 넘어, 수출 구조의 회색지대를 드러낸 사건이었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2018년부터 자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철강 세이프가드(수입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국가별·분기별 수입 쿼터를 설정하여 쿼터 초과 물량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적발된 전문 무역업체 2곳은 이 쿼터를 회피하기 위해 실제 EU 국가인 루마니아, 폴란드, 벨기에 등으로 컬러강판을 수출하면서, 정작 수출신고서에는 비EU 국가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몰도바로 향한다고 신고했다. 이를 통해 쿼터를 관리하는 한국철강협회의 수출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쿼터 관리망을 피하여 수출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며, 정당하게 수출하는 다른 업체들의 무관세 혜택 쿼터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서울본부세관은 정상 수출업체들의 제보를 받아 수사에 착수, 압수수색을 통해 EU 국가와의 수출 계약서, 인보이스 등 핵심 증거를 확보했다.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내부적으로 ‘EU 국가명을 문서에 절대 기재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정교한 위장 선적을 수차례 반복했다. 2020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총 147건, 약 12만 6천 톤 규모의 컬러강판이 이런 불법 경로로 유럽으로 향했다. 시가 기준으로는 약 2,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일부 수출업체의 편법, 불법행위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한국 철강업계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단호하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우리 철강산업은 일정량을 직간접적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미국의 철강 고관세 부과와 USMCA 등 원산지 규정 강화로 어려움이 점차 커지고 있다.
불법수출로 단기적으로 이득을 얻었을지 몰라도, 현재의 무역통상 문제를 더 키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철강 수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사한 조작 시도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U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산 철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면 전체 수출에 직격탄이 우려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수입 철강재 문제도 여전하다. 중국산 수입재가 국산 또는 고급 사양으로 둔갑해 유통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후판에 페이트를 일부 칠한 뒤 컬러강판 HS코드로 수입하여 후판 반덤핑 관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세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제도적 허점을 노린 ‘코드 플레이(code play)’가 실제 시장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 유럽, 일본, 영국 등은 조강을 기준으로 철강 원산지를 판정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철강재를 마지막으로 가공한 국가를 기준으로 판정하고, 수출 쿼터에 국산 물량을 산정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현행 원산지 기준으로 외국산 조강제품을 한국산으로 수출하는 사례 늘면서 미국 등에서 중국의 우회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한국산 철강재에 대한 신뢰와 국가 철강 전후방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지금과 달리 철강 제품 품질을 결정하는 조강이 원산지 표기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최근 철강협회와 관세청이 불공정 무역행위 차단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공정한 무역환경 조성에 뜻을 모으고 불법 수입 및 통상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공동 협력키로 했다. 두 기관의 협력활동을 기대하면서 산업계 내부에서도 자정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을 반드시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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