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강판 역대 최고 수출…어떤 소재일까?

종합 2026-01-02
▲ 포스코 포항제철소 3전기강판공장 정상화후 생산한 첫 전기강판 제품

2025년 전기강판 수출량이 67만3,555톤으로 1~11월 기준임에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주행거리와 직결되는 모터 효율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 통계에 따르면, 25년 전기강판 수출량 중 무방향성 전기강판이 59만 3,582톤으로,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포스코가 유일하게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생산하고 있으며, 고효율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본지는 전기강판이 왜 ‘어려운 강재’로 불리는지, 일반 냉연강판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전동화 흐름 속에서 기술적 진입 장벽이 어디에 형성돼 있는지를 짚어 봤다.

 

구조재를 넘어선 ‘기능성 강재’ 전기강판

전기강판은 철강재이면서 동시에 ‘자기 소재’다. 일반 냉연강판이 강도·성형성·표면 품질 등 구조적 특성을 중심으로 평가된다면, 전기강판은 여기에 철손, 자속 밀도 등 전자기적 성능이 핵심 지표로 추가된다. 이 때문에 전기강판은 철강과 전자재료의 경계에 놓인 대표적인 기능성 강재로 분류된다.

일반 냉연강판의 공정은 열간압연, 산세정을 거친 이후 냉간압연, 열처리, 조질압연으로 이어진다. 얇고 균일한 두께 확보, 가공 시 파단을 막기 위한 연성 확보, 표면 품질 개선 등이다. 열처리 역시 재결정을 통한 미세조직 안정화가 중심이며, 강도와 가공성의 균형을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전기강판은 냉연 공정을 기반으로 하되, 합금 설계와 열처리 조건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최적화된다. 가장 큰 차이는 실리콘(Si) 함량이다. 실리콘은 전기저항을 높이고, 전자기적 손실을 줄이는 역할을 해 통상 2~3% 수준을 첨가한다. 이는 모터나 변압기 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한 설계다. 다만 이는 강판 제조 난이도를 급격히 끌어올린다.

실리콘 함량이 높아질수록 강판은 단단해지고 취성은 증가한다. 압연성은 떨어지고 균열 발생 가능성은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재결정 거동과 결정립 성장 메커니즘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Si 함량이 0.5%만 달라져도 결정립 크기와 집합조직, 자기손실 특성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이는 동일한 두께와 외형을 갖춘 제품이라도, 내부 조직에 따라 모터 효율과 발열 특성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전기강판은 일반적인 철강 제품과 달리 철손과 자속 밀도라는 고유한 품질 지표로 평가된다. 철손은 자기장이 반복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로, 전기에너지가 열로 전환되며 소모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모터나 변압기와 같이 철심이 포함된 장치에서 이 손실이 커질수록 발열과 효율 저하로 이어진다. 오래된 선풍기나 모터를 장시간 사용했을 때 본체가 빠르게 뜨거워지는 현상 역시 이러한 철손과 관련이 깊다.

또 같은 전력을 투입했을 때 더 많은 자기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자속 밀도가 높은 소재다. 전기강판의 성능은 결국 적은 전기에너지로 얼마나 강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는지에 의해 좌우된다.

이 때문에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전기차 구동모터를 비롯해 산업용 모터와 발전기 등 고효율 회전기기의 핵심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전기강판이 단순한 철강재를 넘어, 에너지 효율을 좌우하는 기능성 소재로 평가받는 이유다.

 

고로사,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사실 전기강판은 이미 수십 년간 연구돼 온 소재다. Si계 강판의 물리야금적인 메커니즘과 재결정 이론, 집합조직 형성 원리는 학계에서도 상당 부분 연구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산업적으로 까다로운 이유는 이론과 양산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실험실 수준에서는 이상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어도, 이를 수십만 톤 규모의 연속 공정에서 재현성 있게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압연 롤 상태나 미세한 조성 변화, 설비 조건이 조금만 흔들려도 자기 특성은 즉각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전기강판은 화학야금·물리야금·공정 제어 노하우가 기업 내부에 축적된 경험 데이터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제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구동모터와 고효율 산업용 모터, 변압기 등 전력 효율을 좌우하는 부품 수요가 늘면서 전기강판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강판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 일본의 일본제철, JFE스틸, 중국의 바오강철, 유럽의 아르셀로미탈 등 10여 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가 25년 광양 설비를 확장해 연간 약 139만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국내 다른 철강사들도 무방향성 전기강판 관련 연구개발과 특허 출원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상업 생산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최근 무방향성 전기강판 제조 방법과 관련해 특허를 출원하며 기술 축적에 나서고 있다. 해당 특허는 선행 기술 대비 공정 시간과 속도 등 일부 조건을 보다 구체화해, 최종 제품의 자기적 특성을 균일하게 하고 표면 품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만 현대제철 측은 해당 특허와 관련해 “전기강판 기술 개발과 특허 출원은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특정 공장이나 라인에 적용하거나 양산·판매로 이어질 계획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전기강판이 단순한 설비 투자만으로는 진입이 어려운 품목인 만큼, 기술 축적과 검증을 위한 장기적인 준비 단계로 해석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과 전동화 흐름 속에서 전기강판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으며, 동시에 이 소재가 가진 높은 진입 장벽은 국내 철강 산업의 기술 집중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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