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특집] 포스코 58년…국가 기간산업에서 저탄소·소재 기업으로①

종합 2026-03-30

포스코가 창립 58주년을 맞았다. 1968년 포항 바닷가에서 시작된 제철소 건설은 한국 산업화의 출발점이 됐고, 이후 광양제철소 건설과 민영화, 글로벌 확장을 거치며 세계 상위권 철강사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소재와 저탄소 철강을 아우르는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의 58년은 단순한 기업 성장사를 넘어 한국 제조업 발전의 궤적과 함께한 산업사로 평가된다. 국가 기간산업 구축에서 출발해 민간 중심 글로벌 기업으로 전환하고, 기술 중심 고부가 전략과 친환경 전환까지 이어진 흐름이 하나의 연속된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포스코홀딩스는 2026년 3월 24일 제58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올해를 실질적인 성과 창출의 전환점으로 만들겠다는 경영 방향을 제시했다. 포스코그룹 장인화 회장은 “지난해는 대외 환경 악화와 비용 부담이 겹치며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히면서도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를 중심으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 국가 산업화의 상징으로 출발한 포스코

포스코의 시작은 시장 논리보다 국가 전략에 가까웠다. 1967년 정부가 포항을 종합제철 입지로 확정하면서 한국형 일관제철소 건설 계획이 본격화됐다. 당시 제철소 건설은 단순히 철강 생산시설 하나를 세우는 차원이 아니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할 핵심 기간산업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가 창립됐다. 박태준 초대 사장이 취임했고, 포항 건설사무소가 설치되며 제철소 건설의 전초기지가 마련됐다. 이 시기는 ‘철이 곧 산업화’라는 인식이 국가적 공감대를 형성하던 구간이었다. 철강 생산 능력을 확보해야 조선과 자동차, 기계, 건설 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분명하게 작동하던 시점이었다.

포항제철소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나오는 감격과 환호의 순간. 포스코뉴스룸포항제철소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나오는 감격과 환호의 순간. 포스코뉴스룸

1969년에는 포항제철 설비 규모가 연산 103만 톤으로 확정됐다. 대일 청구권 자금과 함께 제철 프로젝트가 구체화하면서 포항제철은 단순 기업 설립을 넘어 국가 경제 전략의 상징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 4월 1일 포항 1기 설비가 종합 착공되면서, 한국 산업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제조업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 포항제철소는 국내 최초의 일관제철 생산체제를 현실로 만들었다. 1고로와 열연강판, 후판 설비가 가동되기 시작했고, 1973년을 전후해 첫 쇳물과 열연 코일 생산이 이뤄졌다. 국내에서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들고 이를 열연강판과 후판 등으로 이어가는 생산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이후 포항제철소는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3년까지 2기, 3기, 4기 확장이 이어지며 조강 생산 능력은 900만 톤 수준으로 확대됐다. 제철소만 커진 것이 아니었다. 원료 수입을 위한 부두와 항만, 도로와 배후 인프라가 함께 들어서며 포항은 철강도시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포항제철소가 공급한 열연강판과 후판, 냉연재는 조선과 자동차, 가전, 건설 등 수요산업 전반으로 흘러 들어갔다. 한국 제조업이 수출산업 중심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포스코는 그 실물 기반을 제공하는 핵심 기업으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영일만의 기적’이라는 표현 역시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산업 인프라와 제조업 생산기반이 한 지역에 집적된 상징성을 반영한다.

◇ 광양제철소 건설로 완성된 양대 생산 체제

1980년대는 포스코가 단일 제철소 운영 기업에서 대규모 복수 생산거점을 보유한 글로벌 철강사로 올라서는 시기였다. 1982년 광양 부지 호안공사가 시작됐고, 1985년 광양 1기 설비가 종합 착공됐다. 바다를 매립해 초대형 제철소를 건설하는 사업은 그 자체로 한국 중화학공업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광양제철소는 1988년 2기 종합준공, 1990년 3기 종합준공을 거치며 본격적인 생산 기반을 갖췄다. 1989년에는 전사 누계 조강 생산 1억 톤을 달성했다. 포항제철소 하나로 국가 산업화의 토대를 닦았다면, 광양제철소 건설은 포스코를 세계 상위권 철강사로 밀어 올린 분기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92년 이른바 ‘4반세기 건설 대역사 종합 준공’과 함께 포항과 광양을 잇는 일관제철 체제가 완성됐다. 이에 포스코는 조강 생산 능력 2,000만 톤을 넘어서는 대형 철강사로 성장했고, 국민기업이라는 상징성도 한층 짙어졌다. 포항과 광양 두 생산거점을 기반으로 한 체제는 이후 수십 년 동안 포스코 경쟁력의 핵심 기반으로 작동하게 된다.

◇ 민영화와 상장…국가기업에서 글로벌 상장사로

포스코의 성격이 뚜렷하게 달라진 시기는 1990년대다. 1988년 국민주 1호로 상장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포스코는 국가가 키운 기간산업 기업인 동시에 국민이 주식을 보유한 상장사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게 됐다. 

이정부 전 이사가 1976년 12월 2일 착공한 포항 2열연공장 3가열로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3가열로는 푸셔(pusher) 형식의 1·2가열로와 달리 워킹빔(walking beam)식이 적용돼 슬래브 간 마찰로 인한 표면 및 치수의 부정확성을 개선했다. 1978년 2월 28일 2열연공장 준공에 따라 우리나라는 일본·독일·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4번째 광폭후판 생산국이 됐다. 포스코뉴스룸이정부 전 이사가 1976년 12월 2일 착공한 포항 2열연공장 3가열로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3가열로는 푸셔(pusher) 형식의 1·2가열로와 달리 워킹빔(walking beam)식이 적용돼 슬래브 간 마찰로 인한 표면 및 치수의 부정확성을 개선했다. 1978년 2월 28일 2열연공장 준공에 따라 우리나라는 일본·독일·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4번째 광폭후판 생산국이 됐다. 포스코뉴스룸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정부는 보유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했고, 2001년을 전후해 민영화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2002년에는 영문 사명을 Pohang Iron & Steel에서 POSCO로 공식 변경했다. 사명 변경은 단순한 브랜드 교체가 아니라 기업 정체성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영화 이후 포스코는 수익성과 효율성을 더욱 직접적으로 요구받는 기업이 됐다.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철강사로서 생산성, 원가, 제품력, 지배구조 측면에서 새로운 기준을 맞춰야 했다. 국가가 만든 대표 기간산업 기업이 민간 중심 글로벌 상장사로 성격을 바꾼 이 시기는, 이후 기술 투자와 해외 진출, 사업 다변화의 전제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0년대 이후 포스코는 단순한 생산 확대보다 기술 경쟁력 강화와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에 힘을 실었다. 자동차용 강판과 전기강판, 고급 봉형강 등 프리미엄 제품군을 늘리며 수익성 중심 전략을 강화했다. 규모의 경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품질과 기술로 평가받는 철강사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대표 사례로는 파이넥스(FINEX)를 들 수 있다. 포스코는 독자 제선기술 개발을 통해 기존 고로 중심 공정과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원료 유연성과 환경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기술로 평가받았고, 이는 이후 친환경 공정 전환 논의와도 연결됐다.

해외 진출도 이 시기에 본격화됐다. 중국과 동남아, 인도 등 신흥시장에 가공센터와 합작 법인을 확대했고,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준공을 통해 해외 생산체계 구축에도 나섰다. 2011년 장가항 불수강 종합준공, 광양 후판공장 준공 등은 스테인리스와 후판 분야 경쟁력 강화 흐름과 겹친 사례로 꼽힌다.

이 시기 포스코는 세계 조강 생산 순위 2~3위권을 오르내리며 규모와 수익성, 기술력을 모두 갖춘 글로벌 톱티어 철강사로 평가받았다.

◇ 프리미엄 강재와 ESG…철강기업의 역할을 넓히다

2010년대 중·후반으로 들어서며 포스코는 제품 전략과 기업 정체성을 함께 확장했다. 2012년 인장강도 490MPa급 초고장력강판 세계 최초 양산, 2014년 포스맥 개발 등은 포스코가 프리미엄 철강사로 방향을 더욱 선명하게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광양 1고로를 6,000㎥급으로 확대해 세계 최대 규모 고로로 탈바꿈시킨 것도 생산 기술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꼽힌다. 광양 4열연공장, 해외 CGL, 인도 냉연공장 등도 고급 강재 공급 체계 확대와 연결됐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포스코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포스코

이와 함께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움직임도 강해졌다. 2019년 기업시민위원회 출범과 기업시민헌장 선포는 포스코가 생산성과 수익성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주요 경영 가치로 내세우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조강 누계 10억 톤 달성, 프리미엄 철강재 브랜드 포스맥, 이노빌드 등 론칭, 세계경제포럼 등대공장 선정 등은 포스코가 철강 생산기업을 넘어 브랜드와 디지털 전환, ESG 경영까지 포괄하는 기업으로 스스로를 다시 규정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 지주사 전환 이후…‘저탄소·소재’로 확장되는 포스코

2020년대 들어 포스코는 다시 한 번 사업의 방향을 재정의하고 있다. 지주사 체제 전환을 통해 철강 중심 사업 구조에서 이차전지 소재와 에너지, 자원 사업까지 아우르는 형태로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를 정점으로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 리튬·니켈, 수소, 에너지 사업이 분리된 구조가 구축되면서, 기존 제조 중심 기업에서 ‘소재 중심 그룹’으로의 변화가 본격화됐다.

특히 이차전지 소재 부문에서는 리튬 자원 확보와 양·음극재 생산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며 수익 기반 구축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철강 부문에서도 단순 생산량 확대보다 고부가 제품 중심 경쟁력 강화와 저탄소 생산체제 구축이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2026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장인화 회장은 철강 부문에서 원가 절감과 공정 효율 개선을 통해 고정비 절감 효과를 확보하고, 글로벌 생산체계 확대와 저탄소 전환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결국 포스코의 현재 과제는 분명하다. 철강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이고 새로운 소재 사업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현실적인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전기로 기반 생산 확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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