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만의 전기料 개편, ‘탄소중립’ 길을 묻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계절·시간대별 전기요금 개편안’을 두고 철강업계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지난 1977년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 도입 이후 무려 49년 만에 단행된 이번 개편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공급 과잉 시간대 수요를 늘리고, 산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24시간 멈추지 않는 불꽃’을 지켜야 하는 철강업계 현장에서는 이번 개편이 과연 ‘비용 절감’이라는 선물인지, 아니면 ‘비용 전가’라는 숙제인지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이번 개편의 핵심은 명확하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풍부한 낮 시간대 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최대 16.9원 내리고, 상대적으로 수요 관리가 필요한 밤 시간대(경부하) 요금을 5.1원 올리는 것이다. 정부는 산업용(을)을 사용하는 기업의 97%가 혜택을 볼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조업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일반 제조업체나 중소기업에게는 분명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는 정책이다.하지만 ‘97% 수혜’라는 숫자의 함정 뒤에는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중추인 철강업이 자리하고 있다. 철강 공정은 특성상 원료 투입부터 출선까지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속 공정이다. 전기료가 싸다고 해서 한낮에만 가동률을 높이고, 밤에는 설비를 멈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정부 추산에 따르면 24시간 균일하게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의 경우 요금 인하 효과는 ㎾h당 고작 1.0원에 불과하다. 반면, 그동안 원가 절감의 보루 역할을 했던 경부하 요금의 인상은 철강사의 실질적인 비용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더 큰 문제는 이번 요금 개편이 철강업계의 사활이 걸린 ‘탄소중립’ 여정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철강산업은 거대한 전환기 속에 있다.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고로를 전기로로 교체하고, 궁극적으로는 철강 환원 원료를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로 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탄소중립을 위해 에너지원을 전기로 바꾸려는데, 정작 그 연료인 전기요금이 지난 3년간 75%나 폭등하고 체계마저 불리하게 돌아가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전기료가 ㎾h당 1원만 올라도 대형 철강사는 연간 수백억 원의 추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발 과잉 공급으로 인해 수익성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이러한 운영비 상승은 친환경 공정 전환을 위한 투자 재원을 고갈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전환에 필요한 약 4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기업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이 오히려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평균의 오류’에서 벗어난 핀셋 지원책이 절실하다. 다행히 정치권에서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예산으로 뒷받침하는 ‘환경친화적 산업구조 전환 촉진법(K-스틸법)’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 마련을 넘어,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한 ‘산업별 맞춤형 요금제’나 국가 탄소중립 기여도에 따른 ‘전기료 세액공제’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병행되어야 한다.에너지는 ‘산업의 쌀’이다. 특히 전기에너지에 의존해 탄소벽을 넘어야 하는 철강업계에 전기료는 단순한 비용을 넘어 생존을 위한 산소와 같다.정부의 이번 개편안이 재생에너지 생태계 조성이라는 대의를 살리면서도, 국가 기간산업이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무사히 넘을 수 있도록 돕는 ‘연착륙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세밀한 보완 대책이 뒤따를 때, 비로소 49년 만의 개편은 진정한 혁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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