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별 인터뷰1] “위기 속 기회, 눈앞 비용보다 시장 흐름 읽어야”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 실장.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 실장이 올해 한국 철강산업이 대외적 통상 환경 악화, 대내적 비용 상승 요인 심화 등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와 업계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과 K스틸법이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후속 작업 등을 이어가면서 대내외 시장 환경 변화를 면밀히 주시, 그 속에서 발생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미국 시라큐스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5년부터 산업연구원에 재직, 철강·금속산업, 환경, 국제무역을 주 연구분야로 삼고 있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분과위원, 2035 NDC 기술작업반 산업분과장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국회에서 한국철강협회까지 여러 철강업계 포럼과 토론회 등에서 자문 및 패널로 업계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Q. 올해 한국철강업계가 놓인 현실을 진단한다면?
A. 대외적으로는 수출·통상 환경이 악화하고 대내적으론 비용 상승 요인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결국 수출이 핵심인데, 미국의 50% 철강 관세가 지속되고 있고,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외에도 쿼터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고, 일본 등 우리에게 규제를 당한 국가에선 맞대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수출 여건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엔 브라질·아프리카·튀르키예 등으로 물량을 돌리며 버틴 측면이 있지만, 그쪽도 수요 증가엔 한계가 있다.
수출이 줄면 생산 가동률이 떨어질 수 있고, 이미 수익성이 바닥인 상황에서 단기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 내수가 크게 늘기 어렵고, 수입도 기록적으로 줄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더해 비용 상승 요인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으로 진입하면서 일부 기업은 보유 배출권 물량이 소진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배출권을 유상으로 사야 하는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Q. 돌파구가 될 만한 요인은 없을까? 중국이 올해 철강 수출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업계에 기회로 작용하지 않을까?
A. 중국이 수출 통제에 나섰고, 수출 감소가 현실화되면 일부 시장에서 틈새가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수출 통제만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설비 조정과 수출 관리가 함께 가면 효과가 좀 더 있을 것인데, 지금은 여전히 생산능력이 늘어나는 흐름이고, 중국 내수도 살아나기 어려운 상황이라 남는 물량이 계속 생길 가능성이 있다.
업계는 수요 산업과 공급망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선 업황, 대미 투자 확대, 자동차·제조업의 변화(AI 등), 전력망 강화와 에너지 전환,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 중심의 산업 고도화 과정에서 고부가 철강재 수요가 늘 여지가 있다. 물량이 크지 않더라도 그런 쪽에서 계속 기회를 찾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Q. 정부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에서 철근 등 범용재를 중심으로 설비 규모 조정을 지원하고, 기업활력법 활용과 세제 인센티브 등을 통해 사업재편을 뒷받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A. 이번 방안에 사업재편을 어떻게 추진할지 큰 방향, 특히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논의해서 자구책을 가져오면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의지가 확인된다.
그러나 철근 등 특정 부문에서 업계가 함께 설비 규모를 줄이거나 인수합병을 포함해 사업재편에 나서기 위해선 업계가 신뢰할 만한 중장기 수요 전망이 먼저 있어야 한다. 최근 철강 수요 전망을 한 차례 진행했는데 그 내용이 업계에 충분히 공개·공유되지 않았고, 전망 기간도 제한됐다.
이 상태에서는 “정말 그 전망이 맞나”, “2030년까지 얼마나 빠지는 건가, 2035년까지는 어떻게 되는가” 같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 기업들의 참여 의지도 지속되기 어렵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나서길 바란다면 보다 상세하고 고도화된 중장기 전망을 수립하고 이를 지속 업데이트해나가야 한다.
Q.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K스틸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률과 시행령 등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면?
A. 철강 기업의 범위를 확정해야 한다. 지원 대상이 일관제철·전기로 제강 같은 1차 공정 중심인지, 하공정 금속가공까지 포함하는지에 따라 정책 설계가 달라진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 구분이 분명해야 한다. 예컨대 지역에서 사업 재편이 일어날 때 비용 부담 주체가 어디인지, 인력 이동·고용 유지 부문은 어느 측이 설계하고 책임지는지 등이 아직 확실하지 않다.
지원은 조건부·연계형으로 설계돼야 한다. 과잉 품목 조정, 고부가가치화, 저탄소 경쟁력 확보 등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 설비 투자·인수합병 등 조건을 걸어 지원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보조금의 일정 비율은 탈탄소·사업재편에 기여하는 용도로 써야 한다” 같은 구조가 시행령에 담기면 정책이 더 구체화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조달·인프라, 민간 수요 촉진 같은 수요 기반 확보 프로그램은 시행령 단계에서 절차와 주체, 협력 모델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야 이후 하위 규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Q.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됐다. 어떤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는가?
A. CBAM 부담 수준은 유럽연합(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의 무상할당 축소 일정과 연동돼 점진적으로 커진다. 유상할당 비중이 2028~2029년부터 급격히 늘고, 2030년 전후부터 더 높아지며 2035년쯤에는 EU도 사실상 전량 유상할당이다. 그 시점이 되면 인증서 비용 부담이 상당히 커질 것이다.
한국의 탈탄소화 방식이 EU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탄소 감축 노력이 CBAM 체계에서 불리하게 해석되지 않도록 제도 및 외교 대응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CBAM 비용 부담은 있지만 수출 의지를 크게 꺾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용뿐만 아니라 역내 시장 여건 변화도 함께 봐야 한다. EU 철강사들도 올해부터 일부 유상으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고, 유럽 내 업황이 어려워 설비 폐쇄나 고용 악화가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CBAM이 EU에만 유리하게 작동한다 무조건 이렇게 단정짓지 말고 열어둘 필요가 있다.
Q. 현대제철이 미국에 전기로 제철소 투자를 본격화했다. 현지 투자는 언제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A. 미국 시장에서의 유망 수요를 선점하고, 철강 관세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친환경·고급 전기로 판재 분야에서 운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이번처럼 상공정(제강 단계) 투자는 국내 상공정과 대체 관계가 될 수 있다. 큰 틀에선 국내 과잉설비 조정과 고도화에 기여할 여지도 있지만, 동시에 국내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빈자리’를 어떤 산업·지역 전략으로 채울 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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