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2] 현대제철, '자율화 제철소' 향한 첫 걸음

특집 2026-06-15

철강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대규모 설비가 24시간 가동되고 수많은 원료와 제품이 공장 안팎을 오간다. 작은 변수 하나가 생산 차질과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철강사들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DX)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제철 역시 AI를 단순한 업무 효율화 수단이 아닌 제조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보고 있다. 생산 공정과 설비 운영은 물론 원료 물류와 의사결정 영역까지 AI 적용 범위를 확대하며 제조 현장 중심의 AX(AI 전환)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정의하는 스마트팩토리는 단순 자동화 공장이 아니다. 회사는 스마트팩토리 발전 단계를 자동화와 지능화, 자율화로 구분하고 있다. 사람이 하던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는 단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최적의 선택을 지원하는 공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제철은 피지컬(Physical) AI와 에이전틱(Agentic) AI를 중심으로 제조 현장의 지능화를 추진하고 있다.

피지컬 AI는 지능형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 기술이다. 반복 작업이나 위험 작업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주변 환경과 데이터를 인식하며 스스로 대응하는 형태를 지향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에이전틱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작업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술이다. 최적의 시나리오를 제안하고 이상 징후를 사전에 알려 생산성과 품질,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지능화된 로봇을 통한 자동화 확대와 AI 기반 판단 지원 체계 구축을 통해 생산성과 품질,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AX 추진 조직도 이원화돼 있다. 제조부문의 DX·AX는 공정연구센터가 주도한다. 현장 과제를 발굴하고 AI 모델을 개발하며 실제 생산 공정에 적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오피스 영역에서는 DX추진실이 스마트워크 체계 확산을 담당한다. 현장과 사무 부문을 동시에 디지털화하며 전사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셈이다.

특히 현대제철의 AX 전략은 사무 업무보다는 제조 현장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 현재 대표 사례 역시 원료 물류와 생산 설비 운영 등 제철소 핵심 공정에 집중돼 있다.

◇ 연간 250척·원료 3천만 톤…AI가 항만 운영 돕는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하루는 고로 용광로와 압연 설비보다 먼저 항만에서 시작된다.

당진제철소 원료하역부두에는 연간 250척이 넘는 대형 선박이 입항한다. 철광석과 원료탄, 부원료 등 연간 3천만 톤 이상의 원료가 이곳을 통해 들어온다. 원료 공급이 흔들리면 생산계획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항만 운영은 제철소 경쟁력과 직결된다.

다만 항만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공간 가운데 하나다. 선박 입항 일정은 수시로 변한다. 바람과 파고, 조위, 기상 상황에 따라 접안 가능 시간도 달라진다. 하역설비 정비 일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어떤 선박을 어느 선석에 배치하고 몇 대의 하역설비를 투입할지 결정하는 선석계획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복잡한 업무다.

현대제철은 이 영역에 AI를 접목했다. 회사가 개발한 '선석계획 최적화 가이던스 모델'은 다양한 조건을 종합 분석해 최적의 운영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선박 규모와 화물량, 장비 가동 상태, 기상 정보 등을 동시에 고려해 효율적인 선석 배치와 작업 계획 수립을 지원한다.

이 과정에는 개미 군집 최적화 알고리즘(ACO)이 활용됐다. 개미가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인 이동 경로를 찾아가는 원리를 항만 운영에 적용한 것이다. AI는 수많은 시나리오를 반복 계산하며 효율성이 높은 조합을 찾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제철이 AI 모델 개발 이전에 데이터 정비 작업부터 진행했다는 점이다. 기존 항만 정보는 이메일과 엑셀 파일 등에 흩어져 있었다. 선박 일정이 변경될 때마다 담당자가 수작업으로 수정해야 했다. 현대제철은 선박 관련 정보를 자동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거쳐 AI 학습 기반을 구축했다.

현대제철은 해당 시스템을 통해 채선료 절감과 의사결정 시간 단축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회사는 이를 완전 자동화 시스템으로 보지 않는다. 최종 의사결정은 여전히 사람이 수행한다. AI는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최적의 시나리오를 제안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AI는 최적의 방향을 제시하는 가이던스 역할을 수행하며 최종 판단은 운영 담당자가 내린다”라고 설명했다.

◇ 16만 개 신호 읽는 AI…열연공장 정비 방식도 바꾼다

AX는 생산설비 운영 영역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대표 사례는 당진제철소 1열연공장의 예지정비 시스템이다.

열연공장은 1,000℃ 이상의 고온 환경에서 거대한 설비가 24시간 가동된다.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어렵고 작은 이상도 대형 설비 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에는 작업자의 경험과 정기 점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동이나 소리, 온도 변화 등을 통해 설비 상태를 판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미세한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대제철은 설비 곳곳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전류와 온도, 진동, 회전 속도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다. 현재 시스템이 관리하는 전체 신호는 약 16만 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3,195개의 핵심 데이터를 집중 분석해 설비 상태를 진단한다.

예지정비 시스템은 단순히 기준값 초과 여부를 감시하는 수준이 아니다.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 패턴을 분석한다. 전류가 조금씩 상승하거나 진동 리듬이 변하는 등 사람이 놓치기 쉬운 미세한 신호도 감지한다. 설비가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부하 상태인지 공회전 상태인지에 따라서도 데이터를 다르게 해석한다.

대표 적용 설비는 코일박스다. 코일박스는 열연 공정에서 고온의 강판을 임시로 감아 열을 유지하는 핵심 설비다. 움직이는 부품이 많아 관리 중요성이 높은 장비로 꼽힌다. 현대제철은 예지정비 시스템을 통해 코일박스의 미세한 진동과 온도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정비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태와 관계없이 부품을 교체하는 TBM(Time Based Maintenance·시간 기준 정비)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정상·경고·비정상·한계·고장 단계로 상태를 구분해 관리한다.

경고 신호가 발생하면 미리 자재를 준비하고 정비 일정을 수립할 수 있다. 돌발 정지를 줄이고 계획 정비 비중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향후 후판과 2열연 등 다른 공정으로도 예지정비 시스템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의 AX가 단순한 AI 도입을 넘어 제철소 운영 전반을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항만에서 시작된 데이터는 저장고 적치와 배합, 반출, 생산계획으로 연결될 수 있다. 설비 데이터는 생산성과 품질 관리 체계와 연계될 수 있다. 결국 원료 입항부터 제품 출하까지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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