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종이에서 동시대 오브제로…포스코미술관 ‘한지 스펙트럼’ 현장
“이 한지는 비 오는 날 만들어졌어요.”
서울 포스코센터 포스코미술관 ‘한지 스펙트럼’ 전시는 이 한마디 설명에서 시작된다. 국가무형유산 한지장 안치용의 종이 위에는 우연과 공정, 장인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포스코미술관은 ‘한지 스펙트럼’ 특별전을 내년 2월 1일까지 연다. 전시는 전통 공예 재료로 인식돼온 한지를 동시대 예술의 재료로 다시 읽는 구성에 초점을 뒀다.
안치용 한지장 전시 전경. /철강금속신문전시장 첫 구간은 국내에 단 4명뿐이라는 국가무형유산 한지장 가운데 한 명인 안치용 한지장의 작업 세계로 시작한다. 이후 소동호 작가의 조명 오브제와 박송희 작가의 한지 기반 작업으로 이어지며 한지가 ‘만드는 기술’과 ‘쓰는 기술’을 동시에 확보해 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포스코미술관 관계자가 안내한 전시장 동선은 관람객이 한지를 단순히 ‘종이’로 보지 않도록 설계했다. 이번 전시는 작품 제목을 개별적으로 붙이지 않았다. 수북이 쌓인 종이 더미에서 한 장씩 고르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큐레이터는 “한지 한 장 한 장이 작품처럼 보였다”고 말하며 첫 구역을 특정 연작이 연상되도록 일부를 골라 전시했다고 설명했다.
“비가 만든 무늬”부터 옥춘지 상장지까지
전시의 초반부는 안치용 한지장의 ‘다양성’을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포스코미술관은 안치용 한지장의 한지가 단단함과 질김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색과 질감과 공정 실험이 폭넓다고 소개했다.
실제 전시장에는 동글동글한 무늬가 맺힌 한지가 다수 걸려 있다. 큐레이터는 한지 건조 과정에서 갑자기 내린 비가 빗방울 흔적으로 남아 무늬가 생긴 사례를 설명하며 이후에는 비가 오지 않아도 유사한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철강금속신문관람객이 공정과 재료를 따라갈 수 있도록 전통 도구도 함께 배치했다. 닥나무 껍질을 벗길 때 쓰는 닥칼과 삶은 닥을 두드리는 방망이 종이를 다듬는 홍두깨 등이 전시장 한쪽에 놓였다.
닥나무의 껍질을 긁어내 흰 부분만 남기는 과정과 백닥을 삶고 빻아 섬유질을 만드는 과정도 설명했다. 한지 제작에 필요한 점성을 위해 황촉규 뿌리를 함께 쓰며 황촉규 꽃은 염색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안내도 이어졌다.
종이 종류의 ‘격’을 보여주는 장치도 눈에 띈다. 가장 얇은 한지로 불리는 옥춘지를 별도로 소개했고 가장 비싼 종이로는 상장지를 꼽았다. 포스코미술관 관계자는 “상장지가 장관 임명장 등 중요 기록물에 쓰인다”라고 설명했다.
생활 공예와 디자인 조명으로 이어진 한지의 ‘사용법’
안치용 한지장 구역에는 생활 공예품도 함께 전시했다. 한지를 꼬아 실처럼 만든 이후 이를 엮어 만드는 지승공예 사례와 종이로 만든 갓함도 소개했다. 한지를 두드려 덩어리 형태로 만든 함이나 항아리도 전시해 “종이는 접히고 약하다”는 선입견을 흔든다. 옻칠과 기름칠을 더하면 생활용품으로 충분히 쓰였다는 설명도 덧붙었다.
안치용 한지장 지승공예 작품. /철강금속신문이후 공간은 소동호 작가의 ‘오리가미’ 연작 조명으로 전환된다. 큐레이터는 소동호 작가가 2009년부터 종이 접기 방식의 작업을 이어왔고 2011년부터 한지를 주재료로 조명 작업을 해왔다고 소개했다.
기존 기성 한지는 크기와 두께의 제약이 있어 합지로 여러 장을 붙이는 시도도 했지만, 안치용 한지장과 협업하며 원하는 두께와 대형 규격 구현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협업의 다음 과제로는 염색 한지를 조명에 적용하는 방법과 감물의 색 변화 등 시간이 개입하는 요소를 어떻게 설계할지 같은 질문이 제시됐다.
조명 전시는 같은 작품을 서로 다른 조건에서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큐레이터는 한쪽은 실용적으로 빛을 내는 방식에 가깝고 다른 한쪽은 어둠 속에서 조명 자체의 형태와 물성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의 관점이 전시 연출로 연결된 대목이다. 주변에는 쑥 쪽 등 자연 염색 재료와 황촉규 꽃도 함께 전시해 ‘색을 만드는 재료’가 작품 세계로 들어오는 경로를 짚었다.
소동호 작가의 오리가미 연작. /철강금속신문마지막 구간은 박송희 작가의 작품이 채운다. 큐레이터는 박송희 작가가 섬유와 도자를 전공했고 한지를 “천처럼” 다룬다고 전했다. 또한 한지에 결을 살리고 염색을 입히는 방식에 더해 바느질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진 작품은 한지에 그린 요소를 부조 형태로 만들고 나무 철판 도자 등 복합 매체를 결합해 구성됐다.
박송희 작가의 이해관계 순환. /철강금속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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