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철강시장, ‘그린스틸’ 전환이 핵심 경쟁력

분석·전망 2026-05-06

전 세계 철강 생산의 중심지인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이 단순한 생산 거점을 넘어 ‘그린스틸(Green Steel)’ 전환의 핵심 승부처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와 공급망 내 탄소 감축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저탄소 철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고 있다.최근 청정에너지 싱크탱크인 RMI(Rocky Mountain Institute) 분석에 따르면, 아·태 지역의 그린스틸 수요는 향후 10년 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중국을 제외한 7개국(한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의 민간 부문에서 2030년까지 연간 61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철광석 기반 철강이 수요의 80% 차지하고, 철스크랩 기반이 나머지 2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특히 자동차, 건설, 가전 등 철강 수요가 많은 주요 전방 산업들이 스코프 3(Scope 3)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내걸면서, 탄소 배출이 적은 철강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RMI는 연간 3,820만 톤으로 추정되는 이 지역 공공 조달 시장이 2030년 배출량 감축 목표에 맞춰 이루어진다면, 연간 1,150만 톤의 그린스틸 수요를 더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이에 반해 중국을 제외한 아·태 지역에서 2030년까지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는 철광석 기반 친환경 철강 생산능력은 250만 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RMI는 이러한 격차가 새로운 청정 공급 프로젝트를 위한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 RMI 보고서 그래프▲ RMI 보고서 그래프

또한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무역 장벽은 수출 비중이 높은 아시아 철강사들에게 강력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고부가가치 저탄소 제품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되고 있다.현재 아·태 지역 주요 국가들은 각기 다른 여건 속에서 저탄소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 4개국 중심의 대응이 주목받고 있다.우선 한국과 일본의 대응은 유사하다고 평가된다. 기술적 성숙도가 높은 양국 철강사들은 수소환원제철(H2-DRI) 기술 상용화와 대형 전기로(EAF)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품질 특수강 분야의 강점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그린스틸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은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노후 설비를 폐쇄하고 전기로 비중을 높이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저탄소 철강의 단가를 낮추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인도는 최근까지도 신규 설비 증설이 활발한데, 석탄 기반 공정에서 탈피해 천연가스 및 수소를 활용한 직접환원철(DRI) 생산 체계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신흥 그린스틸 거점을 노리고 있다.■ 높은 생산 비용과 인프라 구축은 선결과제RMI는 재생에너지와 결합된 친환경 수소 DRI-EAF가 현재 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거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상업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규모 기술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 국가들이 모두 선철을 친환경 수소 기반 DRI로 대체할 경우, 연간 총 2억 1,100만 톤의 이산화탄소 상당량을 감축할 수 있으며, 이는 해당 국가들의 전체 철강 배출량의 64%에 해당한다.하지만 그린스틸 시대로 가기 위한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성이다. 수소환원제철 등 혁신 기술은 기존 고로 공정 대비 생산 원가가 현저히 높으며, 이를 뒷받침할 그린 수소의 안정적인 공급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보가 필수적이다.철강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그린 프리미엄’ 수준과 실제 생산 비용 간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며, “정부의 과감한 R&D 지원과 세제 혜택, 그리고 저탄소 제품에 대한 시장 표준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결국 미래 철강 시장의 주도권은 누가 더 빨리, 안정적으로 그린스틸 공급 체계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태 지역 철강사들은 단순히 배출량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에너지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철스크랩 등 원료 공급망 확보, 그리고 고객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할 시점이다.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아·태 철강산업이 ‘녹색 전환’을 통해 다시 한번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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