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강판·전기강판도 다음 전장 되나…중국 표준 전략 주목
자동차강판과 전기강판, 특수강 등 고부가 전략소재가 중국 철강 표준 전략의 다음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국가표준을 먼저 구축한 뒤 국제표준으로 확장하는 '중국표준 2035' 전략을 본격 추진하면서 고부가 철강을 둘러싼 경쟁도 가격을 넘어 표준과 인증, 산업 생태계 중심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철강산업에 대해서도 고급강과 특수강 중심의 고품질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품 표준화와 품질 인증 체계를 고도화하고 국내외 주요 인증을 체계적으로 확보해 글로벌 시장 신뢰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도 내놓고 있다.
◇ ‘중국표준 2035’와 철강 표준·인증 전략
철강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중국표준 2035’를 통해 기초연구와 특허, 표준, 산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과거처럼 국제표준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자국 국가표준(GB)을 먼저 제정하고 이를 국제표준화기구(ISO)나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표준으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AI로 생성한 이미지고망간강이 대표적인 사례다. 포스코가 개발한 극저온용 고망간강이 IMO와 ISO 등에서 LNG 선박 탱크 소재로 국제표준 지위를 확보하자 중국은 고망간강에 대한 GB 표준을 잇달아 제정하고 이를 자국 선급 규칙과 일대일로(BRI) 인프라 프로젝트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국제표준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보다 자국 규격을 병렬로 구축해 중국식 표준 생태계를 깔아가는 셈이다.
철강 전반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고품질 발전 전략에서 제품 표준화와 품질 인증 체계 고도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글로벌 프로젝트 입찰에 필요한 선급·건설·플랜트·에너지 효율 인증 등을 적극 확보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소재 자체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표준과 인증 패키지를 포함한 솔루션 공급자로 자리 잡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자동차강판, EV 시대 새 전장
자동차용 초고장력강(AHSS)은 가장 유력한 다음 전장으로 꼽힌다. 전기차 경량화와 안전 규제 강화에 따라 세계 자동차용 AHSS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약 1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2024년 기준 아시아·태평양 AHSS 시장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특징은 강재와 완성차, 표준·인증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생태계 접근이다. 바오우그룹과 바오산강철은 EV용 초고강도강, 핫스탬핑강, 고내식 도금강판, 전기강판 등을 전략 제품군으로 지정하고 신에너지차 소재 솔루션 개발을 그룹 차원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도요타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하이브리드·전기차에 사용하기 위해 바오우 전기강판에 대한 품질 승인을 내리고 공급을 시작하는 등, 중국산 핵심 소재가 글로벌 완성차사의 승인 체계에 편입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이와 같은 신소재 개발 성과를 자국 자동차·부품 강제인증(CCC)과 국가표준(GB) 체계와 연계해 관리하고 있다. 신공법과 신소재 개발이 곧바로 중국식 규격과 인증 생태계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신에너지자동차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묶고 배터리, 모터, 차체, 강재를 아우르는 공급망을 국가 주도 혁신 생태계 안에 편입시켜 왔다. 포스트 중국제조 2025 구상에서도 신에너지차와 지능형 차량은 미래산업의 주요 분야로 포함되며 관련 소재와 부품, 표준, 테스트베드까지 함께 지원하는 플랫폼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강판 생태계는 EV 플랫폼별 요구 특성에 맞춘 AHSS와 3세대 초고강도강, 핫스탬핑강 개발을 시작으로 중국 자동차 공업 표준, 충돌·안전 규정, 부식·내구성 규격과 연결된다. 여기에 BYD, 지리, 상하이GM 등 완성차 업체의 개발 단계에서 소재기업이 동반 참여하고, 중국 완성차의 해외 진출과 함께 중국산 강판과 부품 규격이 동반 확산되는 구조다.
이에 중국이 EV 차체와 배터리 케이스, 구동계 등에 적용되는 자동차강판 규격을 GB 표준 중심으로 정비한 뒤 이를 각국 인증과 완성차 업체 사양서에 스며들게 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 전기강판, 생산부터 규격·인증까지…전력·모터 생태계 구축
전기강판도 중국이 생태계 단위로 움직이는 대표 사례다. 바오강은 최근 몇 년간 전기차용 무방향성 전기강판(NOES) 설비를 증설해 연간 400만 톤 수준의 전기강판 생산체계를 갖췄고, 안산강철과 샤강 등도 고효율 모터와 변압기용 전기강판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 내 무방향성 전기강판 수요는 EV와 고효율 변압기 등을 중심으로 연간 1,000만 톤 수준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이 내수 기반을 바탕으로 에너지 효율 라벨, 변압기 효율 규격, 산업·건설 기준에 전기강판 성능 요건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EV와 전력망 프로젝트 수출, BRI 인프라 사업에 중국산 전기강판과 설비를 패키지로 공급하는 방식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 티센크루프 전기강(TKES)은 중국 등 아시아산 저가 전기강판 유입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감산과 생산 조정에 나섰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방향성 전기강판(GOES)과 관련 부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를 개시하며 역내 산업 보호에 나섰다. 특히 중국산 전기강판으로부터 역내 업체들이 전례 없는 압박을 받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아울러 특수강과 합금강도 중국 15차 5개년 계획에서 전략 육성 분야로 꼽힌다. 중국은 항공우주와 방산, 에너지 설비, 신에너지차, 해양공정 등에 사용되는 고급 특수강을 국가 전략 소재로 규정하고, 내열강과 내식강, 고온합금 등 고부가 제품 개발과 함께 관련 규격·인증 체계 구축도 병행하고 있다.
허베이성과 푸젠성 등 각 지방의 15차 계획에도 항공·에너지용 고급강, 해양공정용 강재, 신에너지차용 특수강 등이 중점 육성 품목으로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특수강 역시 소재 개발에 그치지 않고 표준과 인증, 전방산업을 함께 묶는 중국식 생태계 전략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철강산업에서 내세우는 고품질 발전은 단순히 고급강 비중을 늘린다는 의미를 넘어선다”라며 “표준과 인증, 전방 생태계까지 함께 장악해 소재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에 가깝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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