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철강 ‘국산 둔갑’ 반복되는 까닭
중국산 철강재의 원산지 위장 문제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반덤핑 관세 부과와 원산지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산 철강재를 제3국산이나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불법 유통은 계속 적발되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원산지 위장 문제가 반복되는 가장 큰 배경에는 중국의 만성적인 공급 과잉이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제조업 투자 부진으로 내수 소비가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잉여 물량이 해외 시장으로 쏟아졌고, 저가 수출도 크게 늘었다.
중국 철강재 수출은 최근 다시 연간 1억 톤 안팎까지 증가했다. 중국 내 소비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열연강판과 후판, 봉형강, 스테인리스 제품 등 다수 품목이 세계 시장으로 밀려 나오고 있다.
이미지투데이.한국도 중국산 철강재의 주요 수출 대상국 중 하나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제품이 국내 유통망과 실수요 시장으로 꾸준히 들어오면서 국산 철강재와의 가격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정부는 열연강판과 냉연도금강판, 후판 등 주요 품목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에 대응하고 있다. 일부 품목에는 가격약속 제도도 적용해 일정 가격 이하로 수입되는 물량을 제한하고 있다.
다만 중국산 직수입이 어려워질수록 제3국을 이용한 우회 수입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한 철강재를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싱가포르 등으로 옮긴 뒤 서류상 원산지를 바꿔 한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다.
스테인리스 후판이 대표적인 품목이다. 해당 제품을 생산할 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국가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수출 물량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이 제3국을 거쳐 들어왔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내 유통 단계에서는 중국산 철강재를 국산이나 국내 유명 제조사 제품으로 바꾸는 이른바 ‘택갈이’도 확인되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해 7월 철강과 자동차부품 등에서 23개 업체, 671억원 규모의 원산지 표시 위반을 적발했다. 중국산 제품을 국산으로 표시하거나 기존 원산지 표시를 지운 뒤 판매한 사례가 포함됐다.
앞서 서울본부세관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 스테인리스 철판에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고 유통한 업체를 적발했다. 이 업체는 수입 철판 일부에 포스코 상표를 무단으로 표시해 국내산 포스코 제품처럼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달에도 중국산 스테인리스 플랜지를 국산으로 속여 해외에 판매한 업체 대표와 법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원산지 위반이 국내 판매를 넘어 수출시장까지 번지면서 국산 철강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한 원산지 위장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차이다. 건설과 제조업 현장에서는 톤당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의 가격 차이로 납품 여부가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원산지와 제조사보다 가격과 납기를 우선하는 구매 행태가 저가 수입재를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유인을 키우는 셈이다.
단속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관세당국이 위험 품목을 중심으로 검사를 강화하고 있지만 모든 수입 철강재를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다. 철강재는 강종과 규격, 가공 형태가 다양해 서류와 일부 시료만으로 실제 생산국을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제3국에서 단순 절단이나 포장 변경 등 형식적인 공정을 거친 뒤 원산지증명서가 발급될 경우 서류만으로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생산설비와 생산량, 해당 국가의 수출 실적 등을 대조해야 하지만 대부분 수입 이후 조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공급 과잉과 가격을 우선하는 구매 행태, 원산지 관리의 빈틈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국적 세탁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수입 단계뿐 아니라 유통과 가공, 최종 납품까지 철강재의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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