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일본, 중국 철강 ‘비시장경제’ 규정…열연·냉연 제3국 가격 적용 가능

무역·통상 2026-07-28

일본 정부가 중국산 열연강판과 냉연강판 반덤핑 조사에서 기업별 시장경제지위(Market Economy Treatment·MET)를 별도로 심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기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경영된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중국 내 가격 대신 제3국 가격이나 생산원가를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구조다.

시장경제지위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특정 국가가 원자재 가격, 임금, 환율 등이 정부의 인위적 개입이 아닌 시장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경제체제를 갖추었다고 인정받는 지위를 말한다. 이 지위를 획득하면 비시장경제국(NME)에 적용되는 특유의 무역 규제, 특히 반덤핑 조사에서 제3국 가격이나 구성가격을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절차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은 중국 전체를 시장경제국으로 보지 않는 전제 아래, 개별 기업이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경영되는지를 따로 심사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기업별로 시장경제지위(MET)를 인정하는 틀을 운용하고 있다. 이번 열연·냉연 조사에서 활용되는 질문서는 이러한 기업별 MET 심사를 위해 정부 개입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도구인 셈이다.

◇ 시장경제지위 못 얻으면, 가격 기준도 중국이 아닌 제3국으로

본지가 확보한 일본 재무성의 중국산 열연·냉연 반덤핑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두 조사 모두에 동일한 시장경제 심사 절차가 적용되고 있었다. 가격·생산·판매·투자 결정 과정은 물론 정부 산업정책, 원재료 구매, 노사관계, 회계 처리까지 기업 경영 전반을 포괄적으로 검증한 뒤 시장경제기업 여부를 판정하는 방식이다.

조사 안내문에는 시장경제 조건을 충족한 기업으로 인정될 경우 제출된 가격·원가 자료를 활용해 정상가격을 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대로 시장경제 조건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중국과 경제발전 단계가 유사한 제3국의 가격이나 생산원가 등을 사용해 정상가격을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중국산 열연·냉연강판의 시장경제지위 인정 여부에 따라 정상가격 산정 방식을 달리 적용한다. AI 생성 이미지일본은 중국산 열연·냉연강판의 시장경제지위 인정 여부에 따라 정상가격 산정 방식을 달리 적용한다. AI 생성 이미지

제3국 가격은 조사대상국이 비시장경제국으로 취급될 때, 동종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대체국을 선정해 그 나라의 국내 판매가격이나 수출가격, 또는 생산원가(구성가격)를 정상가격으로 삼는 방식이다. 

대체국 선정 시에는 경제발전 수준, 동종 제품 생산·판매 여부, 가격·원가 자료의 입수 가능성 등이 기준으로 활용되며, 사건별로 조사당국이 판단해 결정한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별도의 시장경제 심사 질문서를 운용한다. 질문서에는 기업이 가격과 비용, 생산량, 판매, 투자 등을 정부의 중대한 개입 없이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했는지를 확인하는 항목들이 담겼다. 모든 답변에는 계약서·회계자료 등 객관적인 증빙을 함께 제출하도록 해, 단순 진술이 아닌 실제 경영 데이터를 통해 시장경제 여부를 검증하는 구조다.

◇ ‘중국제조 2025’부터 철광석 계약서까지…시장경제 입증하라

조사 범위는 중국 정부의 산업정책까지 확장된다. 일본 정부는 제14·15차 5개년 계획, 산업구조조정 정책, 외국인투자 장려산업 목록, ‘중국제조 2025’ 등 중앙·지방정부의 주요 산업정책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동시에 각 정책이 기업의 생산·투자·판매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며, 정부 정책이 기업 의사결정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따로 점검한다.

원재료 구매 과정도 예외가 아니다. 철광석·코크스·석탄 등 주요 원재료 공급업체의 현황과 소유 구조를 제출해야 하고, 공급업체에 정부 또는 국유기업이 출자했는지, 정부 관계자가 이사회에 참여하는지 여부도 조사 항목에 포함됐다. 원재료 가격 형성 과정에 정부 지원·개입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려는 취지다.

원재료 가격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 요구도 세밀하다. 일본 정부는 견적서와 계약서, 주문서, 이메일, 가격 협상 기록 등 거래 전 과정의 문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공급업체 선정 기준과 내부 구매 규정 역시 제출 대상에 포함해, 구매 의사결정이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정책적 고려가 개입했는지를 교차 검증한다.

질문서는 ▲가격·생산·판매·투자 결정에 대한 정부 개입 여부 ▲원재료 가격의 시장가격 반영 여부 ▲노사 간 자유로운 임금 결정 ▲생산수단의 소유·관리 형태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회계 처리와 재무 왜곡 여부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지배구조·재무구조를 통틀어 ‘시장경제 기업’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MET 심사 자체는 비시장경제국을 대상으로 한 반덤핑 조사에서 널리 활용되는 일반적인 절차지만, 열연·냉연에 공통 적용할 정도로 범위·강도가 확장된 것은 일본의 대중국 철강 전략이 한 단계 강화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라며 “향후 다른 중국산 철강재 조사에서도 같은 잣대가 반복 적용될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철강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중국산 열연제품에 최대 30%대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고, 일본은 한국산 열연·냉연 강판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일본이 중국을 대상으로 강화한 시장경제 심사 틀을 한국 기업에도 어느 수준까지 적용할지에 따라 한국산 열연·냉연의 대일 수출 여건과 관세 부담이 달라질 수 있어, 정부와 업계의 면밀한 대응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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