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71년 만의 ‘셧다운’

불황의 터널이 너무 길고 암흑천지다.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절망뿐이다. 철강산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잘 나가는 조선산업과 방산업 등을 보면 배가 아플 지경이다. 물론 우리 업계의 수요처이지만 국산 소재를 애용하지 않으니 섭섭하다. 더 큰 문제는 최대 수요처인 건설산업의 부진이다. 장기 침체로 중견 건설사들이 부도 도미노로 무너지고 있다. 덩달아 철강산업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물건을 팔 곳이 줄어드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철강 공장은 24시간 가동이 철칙과도 같았다. 그만큼 판매처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래없는 불황 앞에 철강 공장이 멈춰 서고 있다. 고상한 용어로 ‘셧다운’이 저승사자의 얼굴로 업체를 옥죄고 있다. 공장을 멈춘다는 것은 회사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 어려운 때도 공장이 멈춰서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기막힌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무려 71년 만에 공장을 멈추는 업체가 있다. 창사 이후 처음이다. 동국제강이 인천공장을 7월에 멈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다.
인천공장은 동국제강 연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주요 사업처이다. 하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철근 가격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극심한 건설경기 침체에 재고가 쌓이자 버티지 못하고 조업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했었다. 앞서 현대제철도 지난 4월 인천 철근공장 가동을 한 달간 멈췄다. 이것도 창사 이후 처음이다. 이 같은 제강사들의 연쇄 셧다운은 철근 공급을 줄여 가격 하락을 멈추겠다는 전략이다. 마지막 ‘버티기’에 돌입했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발생한 공급과잉이 원인이다. 여기에 저가 중국산까지 가세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속절없이 하락하는 가격에 수익은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전기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 특성상 급등한 전기료가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됐다. 지난해 말 산업용 전기료는 판매단가 기준 2년 만에 46%나 올랐다. 그야말로 죽을 맛을 경험하는 전기로 업체다. 이것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1년에 전기료로 1조 원을 넘게 부담하는 업체가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업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쓰나미처럼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건설산업이 살아나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역대급 침체이어서 기약할 수 없다. 물가 상승으로 자재 가격에 인건비까지 올라 수요가 위축된 데다 고금리 부담에 건설사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지금도 부도업체가 늘어나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공사가 줄어들면 철근 등 건설자재 가격이 하락한다. 당연히 철강업체의 타격이 크다.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SOC 예산의 조기 집행 등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가 우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그래야 희망이 빛이 보인다.
전기료 조정은 필수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외친 문재인 정부는 전기료에 대해 나 몰라라 했다. 윤석열 정부는 여론의 부담 때문에 가정용보다 산업용 전기료를 올렸다. 전기로 제강사들이 최악의 부진 늪에 빠진 최대 원인 중 하나다. 상황이 절박한 만큼 단기적으로라도 전력산업기반기금 요율 추가 인하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장 셧다운이 아니라 설비 폐쇄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안심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되면 중국산이 더 활개를 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철강산업은 기반산업이다. 침체가 길어지면 우리나라 모든 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철강업계의 잇따른 악재에 관련 업체들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그렇기에 철강산업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공장을 멈추는 것이 더는 ‘고육지책’이 되어서도 안 된다. 24시간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웃 산업의 도움이 절실하다. 지금처럼 저가 중국산 철강재 사용을 우선한다면 희망은 없다. 싸구려 소재로 물건을 만든다면 제품이 좋을 리 없다.
오죽하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품질 좋은 국산 철강재로 만들어야 양질의 제품을 생산 수 있고 어려움에 처한 국내 철강산업을 살릴 수 있다. 지금은 철강업계가 자포자기하지 않게 수요업계의 분발과 배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산업이 공존하기 위한 우선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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