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봉이 김선달과 구리 도둑

컬럼(기고) 2026-03-16

구전설화 중에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속에는 뛰어난 사기꾼으로 묘사된다. 특히 기발한 착상과 허를 찌르는 행동으로 상대를 농락함으로써 당대 최고 스타가 되었다. 그에게 ‘선달(先達)’이란 칭호가 붙은 것은 과거에 급제했지만, 관직에 임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큰 뜻을 품고 한양에 올라왔지만 변변찮은 문벌과 서북인을 차별하는 풍조로 경시당하자 권세가와 부유한 상인 등을 골탕 먹이며 세상을 조롱한다.특히 한양 사람을 골탕 먹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엽전 한 푼 없이 한양으로 가던 도중 일부러 물에 빠진척한 뒤 자기를 구해준 나그네에게 잃어버린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조선 왕조 내내 정계에서 소외됐던 서북인들의 정서를 일정 부분 대변한 인물이다. 김선달의 사기행각 중에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어수룩한 한양 부자 상인을 속여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사건이다.어느 날 한양에서 욕심 많은 부자 상인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꾸민다. 그는 대동강에서 물을 길어가는 평양 물장수들에게 미리 엽전 두 냥을 나누어 준 다음 물을 퍼갈 때마다 한 냥을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런 다음 한양 부자에게 자신이 물장수에게 물세를 받는 장면을 보여주며 탐욕을 부채질한다. 그렇듯 용의주도한 공작을 펼친 끝에 한양 부자에게 임자 없는 대동강 물을 거금 삼천 냥에 팔아넘겼다. 이튿날 한양 상인은 자신도 강변에 가서 물세를 거두려다 물장수에 몰매를 맞고 쫓겨났다.사기행위의 진수를 보여준 이 사건으로 김선달은 여타 재담가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로 평가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사기꾼은 많다. 하나 같이 모두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 머리를 가지고 좋은 일에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가 사기꾼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바탕 웃는 것은 큰 악의가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물건을 심하게 탐했다면 당연히 범죄자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기껏해야 임자 없는 대동강 물을 팔아넘기는 수준이니 대리만족마저 느낀다.봉이 김선달급은 아니지만, 기상천외한 일이 발생했다. 대동강 물이 아닌 엄연한 국가 재산을 팔아먹은 범죄가 발각되었다.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자 이를 노리고 전봇대 전선을 상습적으로 훔쳐 판 전직 배전공이 경찰에 붙잡혔다. A 씨는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한 달간 전남 신안과 무안, 해남 일대를 돌며 42차례에 걸쳐 전봇대 전선 약 12㎞를 훔쳐 팔았다. 피해 금액도 상당하다. 더군다나 범인은 한때 한국전력 협력 업체 소속 배전공이었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었다.비슷한 범죄 행위는 해외에서도 있었다. 일본의 신사들이 지붕 구리판 절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구리 가격이 급등하자 절도범이 신사를 표적 삼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구리판은 가벼우며 가공하기 쉽고, 내구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외관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 신사 지붕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일본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 있는 나구사 이츠쿠시마 신사는 지난 2024년 10월에 무려 1,630장의 구리 지붕 판을 도난당했다. 특히 이 신사는 ‘귀멸의 칼날’ 팬들에게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정말 요지경 세상이다.구리는 AI 시대 산업 성장을 위한 원자재다.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AI 인프라에 필수적인 광물이다. AI 산업은 엄청난 전력을 소모한다. 이에 따라 AI 서버 전선과 회로 기판의 주요 원료로 쓰이는 구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구리는 또 전력 공급을 위한 변압기와 배선에도 쓰인다. 이러한 이유로 구리 가격은 연일 고공 행진이다. 이것을 기회로 멀쩡한 남의 재산을 절도하는 것은 한참 잘못됐다.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이러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구형 10원짜리 동전을 녹여 구리 성분을 추출한 뒤 동괴를 만들어 파는 수법으로 1년간 20억여 원 부당이득을 챙긴 주물 기술자 등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10원짜리 동전 600만 개를 녹여 구리 성분을 추출해 되판 일당이 잡히기도 했다. 연금술을 통한 구리의 역발상에 아연실색할 정도다. 여기에 비하면 김선달의 사기 행각은 눈감아줘도 될 정도로 악의가 없다. 서북인을 차별하는 풍조에 대한 겸손하기 그지없는 보복에 불과할 뿐이다. 구리 절도보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것이 훨씬 선(善)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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