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반제품 슬래브 가격, 왜 원가만큼 안 빠졌나
국내 슬래브(Slab) 시장이 급격한 가격 조정을 마무리하고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4년 초 80만 원대 중반까지 올랐던 국산 슬래브 가격은 단계적인 조정을 거쳐 2025년 들어 70만 원 중반대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일본산을 중심으로 한 수입 슬래브 가격 역시 60만 원 후반대에서 횡보하는 모습이다.
◇ 원가보다 ‘구조’가 작동한 슬래브 가격
철강업계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기준 국산 슬래브 가격은 톤당 70만 원 중반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24년 1분기 고점을 기록한 이후 하반기부터 조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2025년 들어서는 가격 변동 폭이 크게 줄며 하락 흐름이 사실상 멈춘 상태다. 시장에서는 국산 슬래브 가격이 한 단계 낮아진 가격대에서 균형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슬래브 가격이 일정 수준 아래로 더 내려가지 않는 데에는 품목 특성에 따른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슬래브는 반제품이지만, 고로사 입장에서는 열연강판과 후판 등 주력 제품 생산에 투입하는 핵심 원가에 해당한다.
고로사들이 슬래브를 활용해 자사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인 만큼, 제선·제강 설비가 없는 경쟁 리롤러사에 슬래브를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유인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이에 슬래브 가격은 시황이 약세로 전환되더라도 급격한 인하보다는 하단 방어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평가다.
제선원가 하락 폭과 슬래브 가격 조정 수준을 비교하면, 슬래브 가격의 하단 경직성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본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제선원가는 2024년 1분기 톤당 약 402달러 수준에서 2025년 3분기에는 280달러 안팎까지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제선원가는 약 30%가량 하락한 반면, 슬래브 가격은 10% 안팎의 조정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 하락 폭이 슬래브 가격에 전면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슬래브는 단순한 거래재라기보다는 제조사의 내부 원가 기준으로 작동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 환율·원료·중국 변수…상·하단 동시에 눌린 시장
수입 슬래브 가격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본산 비중이 높은 수입 슬래브는 2024년 1분기 70만 원대 후반에서 출발해 2025년 들어 60만 원 후반대까지 내려온 이후 추가 하락 없이 움직이고 있다. 국산 대비 낮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하락 속도는 둔화하며 안정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슬래브 가격이 일정 수준에서 멈춰 선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 위에 글로벌 원료 시장과 수급 환경이 맞물린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글로벌 철광석 가격은 중국 건설 경기 부진으로 수요가 약화했지만, 주요 광산업체들의 공급 조절로 급락을 피하며 하방 경직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슬래브 가격 역시 원가 부담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하락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환율 환경도 보조적인 가격 방어 요인으로 작용했다. 원화 약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제강사들의 원료 투입 비용 부담이 쉽게 낮아지지 않았고, 이는 슬래브 가격을 무리하게 인하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었다.
동시에 원화 약세는 수입 슬래브의 원화 환산 가격을 끌어올리며 저가 수입재 유입을 일정 부분 제어하는 역할도 했다는 평가다.
반면 중국발 공급 과잉은 가격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철강 수출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국의 무역 규제가 강화되면서 잉여 물량이 아시아 시장에 집중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을 대상으로 글로벌 무역구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중국 철강업계는 반제품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라며 “이에 아시아 역내 슬래브 현물 가격이 억눌리고, 국내 시황 역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수요 산업의 협상력 변화도 슬래브 시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는 수주 호황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개선을 이유로 후판 가격 인하를 요구해 왔고, 자동차 산업 역시 전기차 시장 둔화 여파로 원가 부담에 민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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