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철판은 없다”…현대제철, 전략산업 강재로 후판 체질 바꾼다

현대제철이 후판 사업의 무게중심을 다시 설정하고 있다. 그간 조선·건설 중심의 전통적 수요 구조 안에서 품질과 납기 경쟁력을 키워온 현대제철이, 이제는 원자력·수소 등 고난도 산업 분야로 발을 넓히며 제품 포지셔닝 자체를 격상시키고 있다. 단순한 구조재 공급을 넘어, 전략산업을 뒷받침하는 고부가 소재 기업으로의 전환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변화의 신호탄은 국제 공인 인증 획득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현대제철은 지난 4월 16일, 국내 철강사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기계기술자협회(ASME)로부터 원자력 소재 공급자 품질시스템 인증(QSC)을 획득하며, 원자력 산업 진입을 위한 품질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어 같은 달 29일에는 수소 고압 배관 설계기준인 ‘ASME B31.12’를 충족하는 후판 제품을 개발하며 다시 한번 이목을 끌었다. 

두 인증은 각각 원자력과 수소 산업이라는, 후판 수요 중에서도 가장 정밀한 품질이 요구되는 분야를 겨냥한다. 단지 스펙 충족 수준이 아닌,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 가능한 기술력과 품질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에서 시장 평가가 달라진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은 단순히 철판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부터 가공, 용접에 이르는 전 공정을 내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특히 원자력이나 수소 같은 고난도 산업일수록 소재 자체보다 가공-납품에 이르는 일관된 품질과 기술 신뢰성이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는 이 같은 전략 전환을 단순한 인증 확보 이상의 '근본적 대응'으로 평가하고 있다. 후판 시장은 오랜 기간 조선·건설 등 대량 수요 기반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지만, 최근 들어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2024년 국내 후판 수요는 약 780만 톤(본지 집계 기준)으로 전년 대비 7.6% 감소하며 800만 톤 선이 무너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철강 수요가 급감했던 2020년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내수 판매는 약 570만 톤으로 줄었고, 수입도 210만 톤으로 동반 감소했다. 올해 수요는 전년 대비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후판 수요 감소가 글로벌 침체기나 외부 충격이 아닌 오히려 조선업황이 개선되는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2024년 상반기까진 간신히 400만 톤을 넘겼지만, 하반기 흐름을 고려하면 800만 톤 달성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조선 선종이 후판 사용량이 적은 방향으로 이동한 데다, 비조선용 수요처인 건설·기계 산업은 오히려 더 심각한 부진을 겪었기 때문이다.

수요와 함께 가격도 하락 곡선을 그렸다. 2024년 1분기까지만 해도 톤당 100만 원 초중반대를 유지하던 국산 후판 유통가격은 연말 들어 80만 원 후반대까지 밀려났다. 이는 3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저가 수입재 유입과 전방산업 부진이 겹치면서 가격 방어가 사실상 어려운 구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범용 제품의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장에서 후판 사업의 새로운 돌파구는 ‘고기능·고부가’ 제품군에 있다는 데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전략산업 인증을 기반으로 고부가 수요처에 주력하는 전략은 단순한 제품군 확장 차원이 아니라, 전체 후판 포트폴리오의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현대제철은 조선·건설 중심의 기존 대량 거래 기반은 유지하되, 기술 신뢰성과 고난도 품질을 요구하는 전략산업 프로젝트를 병행함으로써 사업 구조를 다층화하고 있다. 

현재 수소 저장탱크와 풍력 하부 구조물, 해양플랜트용 강재 등 고기능 제품 공급도 진행 중이며, 향후 이들 시장을 전략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