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보세창고 앞에서 갈라진 열연 시장…“반덤핑 취지 살리려면 형평성부터 손봐야”
중국산 및 일본산 열연강판 대상 반덤핑 잠정관세 시행으로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이 사실상 차단된 가운데 보세창고를 기반으로 한 조달 양극화가 표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수출용 보세창고를 기반으로 중국산 조달을 상당 부분 유지하는 대형사와 달리, 중소 하공정업계는 대만·베트남 등 대체 수입재와 국산 제품 사이에서 비용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는 구조가 고착하는 모습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업계에서는 “반덤핑의 취지는 공정경쟁 환경을 만드는 데 있지만, 현재 보세창고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동일 업종 안에서도 규제 강도가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라며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보세 운영 목적과 실제 사용처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가 필수”라는 의견이 잇따른다.
◇ 단독 부두 있는 대기업만 ‘보세 통로’…“큰 물고기는 놔두고 작은 것만 잡혔다”
본지 확인 결과, 열연강판을 사용하는 업계에서는 ‘보세창고 접근성’이 반덤핑 이후 제품 수급 환경을 갈라놓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철강금속신문DB대형 제조사와 일부 중견사는 단독 부두를 기반으로 보세창고를 직접 운영하는 등 중국산 열연강판 반입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중소업체는 시설 요건·운영 비용·행정 절차 등의 이유로 구조적으로 보세 제도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강관업체 관계자는 “보세창고가 있는 기업은 반덤핑 이후에도 중국산을 일정 수준 유지하지만, 보세가 없는 중소업체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다”라며 “정부가 수입 통제 정책을 시행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큰 물고기는 놔두고 작은 물고기만 잡힌 꼴’이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보세창고를 활용할 수 있는 구조는 이미 설비·물류 인프라를 갖춘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며 “같은 수출업체라 하더라도, 보세창고를 가진 기업만 수출 촉진 혜택을 누리고 중소업체는 같은 제도 아래서도 접근할 수 없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국 제도 취지와 실제 적용 결과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 중소 하공정업계, 중국 막히자 ‘대만·베트남 및 국산’으로 이동…“가격 차 거의 없다”
중소 하공정업계는 중국산 열연강판이 막히자 대만·베트남산과 국산 제품을 혼합해 대응하는 수급 구조로 옮겨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환율 상승과 해상운임 부담이 겹치면서 수입재의 가격 경쟁력은 과거 대비 약화했으며, “수입재와 국산의 가격 차가 거의 없어진” 상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가공업체 관계자는 “중국산이 끊긴 지 2~3개월이 됐지만 시장이 바로 흔들리지 않았던 건, 기존에 쌓아둔 재고 덕분”이라며 “재고가 소진되는 내년부터 실제 체감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반덤핑 이후 부담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세창고를 활용하는 대기업은 중국산·대체재·국산을 혼합하며 가격과 물량을 조정할 수 있지만, 중소업체는 변화된 시장 가격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반덤핑 취지 vs 수급 구조…“형평성 없는 제도는 신뢰 못 얻는다”
업계에서는 반덤핑 조치의 취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동일 업종 내에서 기업 규모에 따라 제도 접근성이 달라지는 현재 구조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보세창고 활용 여부가 조달 안정성과 가격 대응력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제도 적용의 형평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세로 반입된 물량은 원칙적으로 내수에 풀 수 없지만, 보세창고를 보유한 기업은 물량 확보와 수출 대응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선다”며 “결과적으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더라도 제도 접근권이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갈리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출 촉진이라는 보세창고의 운영 목적을 명확히 하고, 내수·수출 물량에 대한 관리·검증 체계를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덤핑의 목표가 공정경쟁이라면, 제도 활용 기회 역시 동종업계 전반에 균등하게 제공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해외도 예외 설계 병행…베트남, ‘폭 기준 차등 적용’ 사례 주목
해외에서도 반덤핑 조치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구조는 아니다. 베트남은 2025년 2월 중국산 열연강판(HRC)에 대해 23.1~27.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폭 1,880mm 초과 제품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자국 업체인 포모사(Formosa Ha Tinh)·호아팟(Hoa Phat)이 해당 규격을 생산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실제 올해 상반기 베트남 HRC 수입 중 약 74~86%가 2,000mm 폭 제품으로 집계됐으며, 이 예외 규정이 산업 수급 안정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예외 규격이 우회 수입 루트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베트남 정부는 최근 1,880~2,000mm 또는 2,300mm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동시에 anti-circumvention(우회수입 방지조치) 조사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수요 규모와 채산성 문제로 제조사가 대응하지 않는 규격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맞는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야드 고객센터
경기 시흥시 마유로20번길 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