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철스크랩 AI 도입, 어디까지 왔나?
철강산업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저(底) 탄소 생산체제 전환에 박차를 가하면서 철스크랩의 중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는 '꿈의 기술' 수소환원제철법이 지목되지만 상용화까진 아직 시동 단계 수준이다.
저탄소 원료인 철스크랩을 투입해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 공정은 고로 공법 대비 탄소배출을 최대 75% 줄일 수 있어 정량적인 측면에서 탄소감축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소환원제철법 이전 과도기 단계에서 구체적인 탄소감축 효과와 함께 고품질 철강 생산을 위해서는 전로에서 철스크랩 사용 확대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내 제강사들이 한 해 구매하는 철스크랩 규모는 15조원에 육박하고 있으나 철스크랩 분류는 아직까지 대부분 제강사별 현장 작업자 목측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과 휴먼 에러 뿐만 아니라 안전, 품질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엄격해지면서 관련 산업 고도화 필요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특히 최근에도 제강사 철스크랩 야적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안전 문제가 크게 불거졌으며, 불량 스크랩 혼입으로 철강 생산이 차질을 빚는 등 다방면으로 업계에 경각심을 주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내에서도 AI(인공지능) 기반 철스크랩 검수 시스템 도입 및 상용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철스크랩 AI 검수 시스템 도입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우리나라 역시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AI 기술 도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 AI 기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까
철스크랩 입고 단계부터 AI를 활용하면 안전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AI 검수 시스템은 철스크랩 입고 차량이 반입될 때 AI 카메라가 적재된 철스크랩의 하화 장면을 모니터링하면서 자동으로 철스크랩의 등급과 비율을 분석해 입고 차량의 등급 판정을 진행한다. 아울러 폭발성 물질이나 밀폐 용기 등 위험물도 실시간으로 탐지한다.
이렇게 검수된 정보는 모든 현장에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작업자 숙련도에 따른 편차 없이 검수의 표준화가 가능해진다. 또한 검수장으로 들어온 차량을 AI가 자동으로 지속 추적하기 때문에 현장의 불편함도 최소화 할 수 있다.
향후에는 1명의 관리자가 여러 야적장 전체의 AI 검수 시스템들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위험한 작업환경에 투입되는 인원도 최소화가 가능하다.
제강 전기로에 투입되는 장입 공정에서도 AI의 활용 가치는 높다. AI가 추천하는 철스크랩의 최적 등급별 비율을 투입하면서 전력 사용을 최소화해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스크랩은 등급에 따라 철 함유 성분이 다르며 품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AI 도입으로 철스크랩의 등급·성분 데이터를 분석해 용탕(溶湯) 화학성분을 예측하면 정확한 원료 배합과 공정 최적화가 가능하다.
아울러 각 로별(爐別)로 투입된 철스크랩 데이터 축적 시 추후 제품 문제나 사고 발생 시 원인 추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현재 철스크랩 AI 장입 시스템을 도입한 제강사에서는 장입 전후의 상황을 고해상도 카메라로 자동 촬영·저장하고 있다.
저장한 영상데이터로부터 장입 지시사항과 실제 장입사항을 비교 분석하면서 정량화에 대한 효율성과 함께 사고 발생 시 다양한 문제들을 원인 규명하는 데 용이해 현장 만족도가 높다.
이처럼 데이터에 기반한 투명한 관리를 통해 제강 공정의 안전성과 신뢰성, 원가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현재 국내 적용 상황은
국내 철스크랩 AI 시스템 도입은 '초기 단계'로 대부분 연구개발이나 소규모 PoC(개념검증)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주요 철강사들을 중심으로 발빠른 시험 적용이 진행 중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 국내 유수 제강사들이 이미 국내 AI 솔루션 업체들과 협력해 현장 테스트를 시작했고, 일부는 전기로 장입과 입고 검수 공정에서 AI 시스템을 시범 가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대한제강은 LG CNS와 합작법인 아이모스(AIMOS)를 설립해 독자적인 AI 스크랩 판정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사 공장과 유통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산업계 전반에 기술 도입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 상용화 초입인만큼 대부분의 사례가 파일럿 운영이나 실증 사업 단계인 상황이다.
특히 정확도나 경제성 면에서 목표 수준에 근접한 솔루션도 있는 반면 아직까지 현장을 대체하기에는 추가적인 검증과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 AI 시스템 간 기술적 차별성이 있나
철스크랩 AI 검수 시스템 간에도 기술 수준에 따라 성능과 적용 범위 등 뚜렷한 차별성이 존재한다. 크게 △고도화된 범용 AI 시스템 △위치 고정형 AI 시스템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고도화된 범용 AI 시스템은 현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입고된 철스크랩 차량의 정차 위치나 각도가 매번 달러도 AI 카메라가 차량을 추적하면서 인식할 수 있고, 이동하는 철스크랩이나 크레인도 실시간으로 추적 분석한다.
다양한 데이터로 폭넓게 학습된 AI 모델을 탑재해 특정 작업장 조건에 국한되지 않고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시스템은 신규 현장에 투입될 때에도 최소한의 학습이나 튜닝만으로 즉시 활용이 가능해 확장성과 범용성에서 우위에 있다.
반면 위치 고정형 AI 시스템 같이 제한적인 환경에서만 작동하도록 개발된 사례도 있다.
위치 고정형 시스템의 경우 카메라 각도와 차량 정차 위치가 미리 정해진 상태에서만 인식이 가능하며 조명이나 배경 등 환경 조건이 달라지면 성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
특정 시나리오에 특화된 솔루션은 범위를 벗어났을 때 대응력이 떨어지고 현장 변동에 따라 검출 실패나 오류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한정된 유형의 철스크랩 이미지만으로 훈련된 모델을 사용하는 시스템은 익숙지 않은 등급이나 현장이 바뀌면 오인식할 확률이 높아진다.
초기 도입분 중에는 이러한 고정형 접근을 취한 사례도 있었으나 현장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기술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 도입 초기 신뢰 형성과 데이터 주권
최근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해외 업체들의 국내 시장 공략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AI 철스크랩 솔루션 업체들은 이미 자국 내 100여곳의 제강소에 시스템을 공급하며 기술력을 입증했고, 일본 등 주변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앞세워 국내 철스크랩 시장을 파고들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데이터 유출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제조 공정 영상이나 원료 정보가 담긴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전송될 경우 산업기술 유출이나 보안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만 보고 해외 솔루션을 도입했다가 자사 데이터 주권이 침해당하거나 기술 지원 부실 등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철스크랩 AI 기술 도입이 확산되며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시장에 공유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부 프로젝트 성과가 과도하게 강조되거나 타 기술에 대한 부정확한 평가가 전달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특정 제강사와 AI 솔루션 업체가 협력해 추진한 프로젝트에 대해 외부에서 실제 성과와 다른 정보가 전달된 사례가 있었고, 이로 인해 다른 기업의 도입 판단이 지연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도입 초기 단계에서 객관적 검증과 신뢰 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정보 혼선이 이어질 경우 기술력 축적과 현장 적용에 필요한 학습 기회를 상실하고 산업 전체의 성장 속도가 저해될 수 있다. 따라서 업계 전반에는 기술 성과에 대한 객관적 기준과 투명한 정보 유통 체계의 정착이 절실하다.
■ 성공적인 국내
철스크랩 AI 검수 시스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산업 표준과 평가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 다행히 현재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시스템에 대한 국가 표준 제정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향후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데이터 표준과 등급 체계, 성능 지표 등을 명확히 규정하면 공급자 간 기술 수준 비교가 용이해지고 수요 기업도 안심하고 AI 시스템 도입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준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AI 시대에 데이터는 곧 경쟁력이다. 정부 차원에서 산업 데이터의 무분별한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데이터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철스크랩 영상 데이터와 분류 결과를 국내에 안전하게 저장·관리하도록 유도하고 민감한 공정 데이터에 대해서는 엄격한 보안 요건을 부과해야 한다.
아울러 공급업체들도 정보 보호에 대한 자발적 노력과 책임 의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클라우드 인프라 사용, 모델 투명성 검증 등으로 사용자 불안을 해소해야 국내 기술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공정한 시장 평가 체계를 구축하여 국내 혁신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가격 위주의 경쟁보다는 정량적 성능지표(스크랩 인식률, 판정 정합성 등)와 현장 적용 능력을 종합 고려하는 평가 기준을 업계에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나 협회 차원에서 철스크랩 AI 솔루션들을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우수 기술에 대한 인증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이를 통해 실제 검증된 기술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게 하고 근거 없는 풍문이나 로비에 휘둘리지 않는 투명한 도입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유망한 국내 기업에 대해 R&D 지원과 세제 혜택을 지속함으로써 이들이 일시적 가격 경쟁에 밀리지 않고 기술 리더십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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