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9]“가격이 아닌 가치로 승부”…컬러강판 ‘고급화’로 활로 모색
국내 컬러강판 시장의 화두는 이제 분명해졌다. 물량 경쟁이 아니라 고급화 경쟁이다. 공급 과잉과 내수 부진, 중국산 저가재 유입, 건설·가전 수요 둔화가 겹치면서 범용재만으로는 수익성을 방어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범용재 중심의 물량 공세와 단가 인하 경쟁은 저가 제품을 앞세운 중국 등 신흥국 철강사들을 당해낼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 국내 주요 제조사들은 공통적으로 ‘프리미엄화’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고 있다. 다만 접근법은 조금씩 다르다. 어떤 회사는 디자인과 건축 마감재로서의 완성도를 강조하고, 어떤 회사는 내식성·내후성·재활용성과 같은 기능성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또 어떤 회사는 친환경성과 인증, AI 기반 품질관리 체계를 앞세운다.주요 업체들의 고부가가치 고급화 전략이 상호 작용하면서 대한민국 컬러강판 산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철을 만드는 ‘K-철강 프리미엄 기지’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동국씨엠, ‘럭스틸·앱스틸’로 디자인 프리미엄 선도동국씨엠은 가장 전형적으로 ‘컬러강판 프리미엄화’를 밀어붙이는 회사다. 동국씨엠 고급화 전략의 양대 축은 건축용 프리미엄 브랜드인 럭스틸(Luxteel)과 가전용 브랜드인 앱스틸(Appsteel)이다. 2011년 론칭해 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럭스틸은 철강에 디자인을 입혀 건축 자재의 품격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는다. 실제로 유명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디자인한 서울 송현동 광장의 조형물 ‘휴머나이즈 월’의 외벽 자재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메인 조형물 등에 공급되며 단순 자재가 아닌 ‘건축 미학의 요소’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동국씨엠의 전략은 단순히 ‘색이 좋은 강판’을 파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2023년 ‘Metal Trend 2024·2025’ 행사에서 럭스틸을 친환경 건축 소재, 앱스틸을 프리미엄 가전 소재로 제안했다. 럭스틸은 ‘다음 세대를 위한 컬러강판’을 뜻하는 ‘NEXT’를 키워드로, NATURAL·MODERN·GATE의 3가지 테마를 통해 건축용 컬러강판이 단순 외장재가 아니라 공간 이미지를 만드는 소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앱스틸 역시 메탈룩·친환경 컬러·대지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을 통해 가전 소재의 감성 요소를 강화했다. 이 설명은 동국씨엠이 컬러강판을 더 이상 범용 판재가 아니라 디자인 중심의 고부가 소재로 재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건축 시장 공략 방식도 눈에 띈다. 동국씨엠은 럭스틸이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 2회 연속 우수 건축자재로 선정됐고, 충남 도성의 빌딩솔루션센터를 통해 3D 설계·디자인 지원과 가공 솔루션을 제공하며, 컬러강판 제조사 중 유일하게 기본 설계부터 제작, 적용 상담까지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됐다. 이는 고급화의 핵심이 제품 그 자체뿐 아니라 설계-가공-시공까지 묶은 솔루션화에 있음을 시사한다.지난해 동국씨엠은 세계 최초로 천연석 등 자연 소재와 동일한 질감과 사실적 디자인을 동시에 구현한 ‘듀얼스톤(Dual Stone)’ 기술과 3원계 고내식 도금기술을 기반으로 세계 최초 태양광 전용 초고반사(超高反射) ‘솔라셀 컬러강판’(Solar cell PCM)을 개발했다.듀얼스톤 기술은 동국씨엠만의 독자적 표면처리 기술로 천연 자재와 동일한 수준의 깊고 사실적인 복합 질감을 표현하고, 동국씨엠만이 보유한 디지털프린팅 기술을 더해 패턴 길이를 기존 1m수준에서 최대 10m까지 확대함으로 자연스러움을 극대화 한 점에서 차별화된다. 동국씨엠 고내식 도금강판(GIX·GLX)을 활용할 경우 폭염이나 폭설에도 최대 30년까지 변색과 마모없이 품질 유지가 가능하다.솔라셀 컬러강판은 기존 소재의 빛 총 반사율(TSR: Total Solar Reflectance)이 50~60 수준에 그치던 것을 80~85 수준까지 높였다. 현존하는 지붕재용 건축 자재로서는 구현할 수 없는 수준이며, 적용 시 양면형 태양광 모듈 기준 발전 효율이 30% 향상된다. 아연-알루미늄-마그네슘 비율 정밀 조정과 특수 공정을 통해 일반 갈바륨강판 대비 2배 이상의 내부식성과 가공성을 갖췄다. 도료층는 20년, 도금층은 30년간 품질이 유지된다.
▲ 동국씨엠의 솔라셀
▲ 동국씨엠의 듀얼스톤□ KG스틸, 기능성과 내구성으로 북미·유럽 시장을 노린다KG스틸의 고급화 전략은 보다 실용적이고 기능지향적이다. KG스틸은 지난 2021년 프리미엄 컬러강판 통합 브랜드인 엑스톤(X-TONE)을 출범하며 고급화 경쟁에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소재의 탁월함(Excellence), 기술의 전문성(Expertise), 제품의 확장성(Extension)을 뜻하는 ‘X’와 분위기(Tone)의 합성어인 엑스톤은 철저한 ‘고객 맞춤형 기능성’과 ‘선제적 친환경성’을 무기로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KG스틸은 엑스톤 브랜드 아래 범용 폴리에스터 제품은 물론, 고내후성(SMP·SPE·NEXGEN), PVDF, 우레탄, 프린테크, 매트 질감 제품 등을 폭넓게 운영하고 있다. 특히 NEXGEN은 40년 보증 제품으로 설명되며, 프린테크는 목재·석재·벽돌·금속 질감을 강판에 구현하는 제품군으로 제시된다. 즉 KG스틸은 컬러강판 고급화를 수지 체계의 고도화, 내후 보증, 텍스처·프린트 다양화로 풀고 있다.엑스톤의 강력한 경쟁력은 다양한 산업 현장과 생활 공간의 니즈를 저격한 고기능성 제품 라인업에 있다. NF 불연컬라강판은 국내 최초로 불연재료 KS 기준을 충족해 화재 안전성을 극대화한 제품으로 안전 기준이 강화된 건축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또한 바이오코트 항균강판은 은나노 입자를 도료에 첨가해 강판 표면의 세균 번식을 억제한다. 네이버의 제2사옥인 ‘1784’ 내의 로봇-인간 공존 사무 공간 파티션용 가구 자재로 140톤 이상 대량 공급되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입증했다.
▲ 미국 최대 지붕 자재 전시회 국제루핑엑스포에 선보인 KG스틸의 엑스톤 스톤칩 엠보스 강판
나무 질감을 그대로 살린 ‘리얼우드’, 냉동 판넬용 ‘스노우 크리스탈’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엠보스 패턴을 보유해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가치를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미국 샌안토니오 국제 루핑 엑스포에서 ‘스톤칩 엠보스 강판’을 공개했고, 국내 코리아빌드위크에서는 협력사와 공동 개발한 ‘덧방강판’을 선보였다. 스톤칩 엠보스 강판은 자연석 질감을 구현한 지붕 자재로서 100% 재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웠고, 덧방강판에는 자사 맥코트(MaCOT) 컬러강판이 적용됐다. 맥코트는 일반 아연도금강판보다 내식성이 10배 우수한 특성을 갖는다. 이는 건재용 컬러강판 시장에서 ‘예쁜 강판’보다 오래 가고, 강하고, 친환경적인 강판을 프리미엄의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풀이된다.최근 1분기 기업설명회에서 KG스틸은 컬러강판 제품의 디자인 다변화, 신규 패턴 확대, 우드 패턴 개발 등을 통해 내수와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KG스틸의 고급화가 내구성과 내식성 같은 기능뿐 아니라 규제 대응형 친환경 제품과 디자인 포트폴리오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포스코스틸리온, 기능성·친환경성을 ‘인피넬리’에 집약포스코스틸리온은 브랜드 중심의 고급화가 가장 선명한 회사다. 회사는 컬러강판 통합 브랜드 인피넬리(INFINeLI)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철”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강조한다. 인피넬리는 단순히 색을 입힌 강판이 아니라, 석재와 목재를 대체할 수 있고 고내식·고내후성을 바탕으로 사용 기간을 늘리며 재활용 가능한 컬러강판 브랜드다.포스코스틸리온의 고급화 전략은 단순히 철을 단단하고 고르게 코팅하는 기술 중심에서 벗어나, 디자인·감성·CMF(Color, Material, Finish) 역량을 결합하는 유연함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들은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등 학계와의 활발한 산학협력을 통해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가전 및 건축 자재에 즉각 반영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포스코스틸리온의 차별점은 기능성 제품군이 매우 세분화돼 있다는 점이다. 고내식, 고내후, 불연, 항균·항바이러스, 자기세정, 안티그라피티, 대전방지, 차열 등 기능별 제품 구성이 제시돼 있다. 이는 컬러강판 고급화를 디자인과 패턴뿐 아니라 건축·가전·공공시설에서 요구되는 성능 자체를 솔루션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다.친환경성도 중요한 축이다. 포스코스틸리온은 옥수수 속대에서 추출한 바이오매스 도료를 적용한 바이오매스 컬러강판을 개발했고, 이 제품은 국내 최초로 미국 UL 시험을 통과해 친환경 제품으로 인정받았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표면 질감 구현과 항균 성능을 추가한 제품들을 연이어 개발하고 양산·판매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로 미국 UL 시험을 통과해 친환경 제품으로 인정받은 포스코스틸리온의 바이오매스 컬러강판
디자인 고급화에서도 포스코스틸리온은 독자 기술을 앞세운다. 고해상도 이미지를 그대로 인쇄하는 프린트 강판 기술력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이 제품은 기존 프린트 강판 대비 해상도가 4배 이상 높은 1200dpi 수준이며, 풀컬러 구현과 정밀한 디자인 표현이 가능하다. 포스아트(PosART)와 최근의 윈스톤(WinsTone) 같은 입체 질감 제품들은 컬러강판이 단순한 도장재가 아니라 예술성과 텍스처를 담는 고부가 표면처리재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디자인 중심의 CMF 전략은 최근 급성장 중인 글로벌 신흥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 가전 시장이 대표적이다. 포스코스틸리온의 인도 가전용 컬러강판 판매량은 지난 2019년 300톤 수준에서 2024년 7,800톤으로 무려 26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향후 수년 내 1만 톤 고지를 돌파할 것으로 점쳐진다. 철강에 감성을 더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포스코스틸리온의 전략이 글로벌 영토 확장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세아씨엠, 초고광택 ‘미러코트’ 품질로 승부수세아씨엠은 최근 초고광택 프리미엄 브랜드인 미러코트(MIRROR COAT)를 선보이며,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러코트는 기존 컬러강판(PCM) 제품의 고질적 한계로 지적되어 온 ‘광택과 선명도 부재’를 기술적으로 완전히 극복한 결정체다. 물체가 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치는 정도를 뜻하는 선영성(DOI) 지수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는데, 이는 기존 시장 제품(40~60 수준)을 압도하는 수치다. 높은 단가와 까다로운 공정 때문에 프리미엄 가전에 주로 쓰이던 필름 부착형(라미네이트) 강판의 심미성을 순수 코팅·프린트 기술만으로 완벽히 대체해 낸 것이다.
▲ 세아씨엠 미러코트
세아씨엠은 연간 30만 톤 규모의 컬러강판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가전용 프리미엄 라인업 강화를 위해 신규 가동한 ‘No.3 CCL(컬러코팅라인)’을 통해 미러코트의 양산 체제를 완비했다. 표면의 미세한 결함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품질 관리를 기반으로 상표권 및 특허 출원까지 마쳤다. 미러코트는 해외 수출 가전 시장에서 먼저 색상과 질감 검증을 통과해 실제 판매 성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국내외 하이엔드 건축 내외장재 프로젝트로 적용 범위를 넓히며 세아씨엠의 수익성을 견인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세아씨엠은 최근 ‘가격 경쟁이 아니라 품질 승부’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세아씨엠은 2026년 기술개발실을 대표이사 직속 조직으로 신설하고 디자인파트와 기술개발파트의 두 축으로 운영할 계획이며, 최근 시장이 범용재보다 프리미엄·특화 제품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저탄소 강판, 크롬프리 강판, 고해상도 디자인 컬러강판 수요 확대에 대응해 하이엔드 고기능·고품질 컬러강판과 알루미늄 컬러강판을 핵심 전략 제품군으로 삼는다고 밝혔다.품질관리 측면에서 세아씨엠은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CGL과 CCL 전 라인에 AI 기반 스마트 표면결함검출기(SDD)를 적용했으며, 370여개 이상의 결함 이미지를 학습한 AI 알고리즘으로 검사 정확도를 높였다. 이는 세아씨엠이 고급화를 단지 신제품 출시가 아니라 공정 정밀도와 불량 예방 능력까지 포함한 제조 경쟁력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고급화의 본질은 ‘디자인’이 아니라 ‘시장 재정의’아주스틸과 DK동신도 고급화 전략를 적극 추진 중이다. 아주스틸의 기술력이 집약된 프리미엄 라인업은 아텍스(Atex) 브랜드로 전개된다. 도어(Atex Door), 루버(Atex Louver) 등 건축 인테리어는 물론 프리미엄 엘리베이터(Atex EL)와 가전 소재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철의 미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EVI(고객 맞춤형 기술 지원) 방식을 고수한다. 아주스틸은 철판 표면에 미세한 홈을 파서 머리카락 같은 세밀한 질감을 내는 헤어라인 공법이나 고해상도 디지털 프린팅 기술을 통해 대리석, 천연 나무, 패브릭의 질감을 완벽하게 직조해 낸다.아주스틸은 전방 산업인 프리미엄 가전 고객사들과 글로벌 단위에서 긴밀하게 밀착해 있다. 글로벌 철강 시장의 재편 흐름 속에서 아주스틸이 보유한 유럽 등의 해외 거점과 정교한 표면처리 가공 역량은 국내 철강업계 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시너지 자산으로 평가받는다.DK동신은 국내 최초로 PCM(Pre-coated Metal) 컬러강판 제조 기술을 도입한 전통의 명가로, 고유의 정교한 코팅 공법과 우수한 다색 프린트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강 소재 전문 인테리어 회사 설립’이라는 신성장 동력을 추진 중이다. 생산한 프리미엄 컬러강판 내외장재를 활용해 시공과 인테리어 영역까지 직접 아우르는 전방위 다각화를 모색함으로써, 강판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고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다.이처럼 주요 제조사들의 사례를 종합하면, 컬러강판 업계의 고급화 전략은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디자인 고도화, 둘째는 기능성 강화, 셋째는 친환경·규제 대응, 넷째는 품질 신뢰와 솔루션화다. 그리고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프리미엄이 만들어진다. 이제 컬러강판의 경쟁은 ‘무엇을 얼마나 싸게 파느냐’가 아니라, ‘어떤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소재로 자리잡느냐’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 컬러강판 업계의 고급화 전략은 바로 그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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