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15) 비철금속산업 경쟁력 진단…공급망 재편 속 새로운 성장전략 모색
비철금속산업은 오랫동안 국내 제조업의 기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자동차와 조선, 건설, 전기·전자 산업은 물론 반도체와 전기차, 이차전지, 방산,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산업 전반에 폭넓게 활용되며 국가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리와 알루미늄, 니켈, 주석 등 주요 비철금속은 전력망 구축과 경량화, 배터리, 전자부품 분야의 핵심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비철금속산업은 철강이나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공급망 안정과 첨단산업 육성이 중요해지면서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비철금속을 신규 주력 수출품목에 포함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비철금속산업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60조원 수준으로 성장했으며 제조업 매출의 약 2.9%,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는 약 960개 관련 기업과 4만여명의 종사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제련부터 가공까지 산업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우리나라는 비철금속 생산 세계 9위, 소비 세계 6위 수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연과 납, 전기동 분야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료 부존국이 아님에도 제련·가공 기술과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글로벌 비철금속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전력망 구축, 전기차·ESS 보급 확대, 재생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비철금속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은 비철금속산업이 향후 공급망 안정과 첨단 제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전략산업으로서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 공급망 전쟁, 새로운 변수로 부상
국내 비철금속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대외 변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과거에는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면 생산과 판매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에는 공급망 자체가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 세계 비철금속 시장은 사실상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비철금속 생산의 54%, 소비의 60.2%를 차지하고 있으며 알루미늄과 구리, 아연, 납, 니켈 등 주요 품목에서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광산 개발부터 제련·가공까지 공급망 전반을 구축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으며 최근에는 첨단 소재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세계 비철금속 생산·소비 중 중국 비중(2024년)
문제는 중국의 생산 확대가 일부 품목의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업계도 중국산 제품 유입 확대를 주요 리스크로 보고 있다. 실제 국내 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은 알루미늄박 93%, 알루미늄판 80%, 동판 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민족주의 확산도 주요 변수다. 최근 자원 보유국들은 핵심광물을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며 수출 통제와 생산 쿼터, 현지 가공 의무화 등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는 니켈 원광 수출을 제한하고 자국 내 제련산업 육성을 추진하며 글로벌 니켈 공급망 구조를 바꿔 놓았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DRC의 코발트 관리, 칠레의 리튬 개발 정책 강화 등도 같은 흐름으로 평가된다.
국내 비철금속산업은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아 이러한 변화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알루미늄은 원재료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구리와 아연, 납 역시 정광 수입 의존도가 높다. 산업연구원은 공급망 안정성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며 원료 확보 전략 다변화와 재활용 확대, 전략광물 확보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향후 비철금속산업 경쟁력은 단순 생산능력보다 공급망 안정성과 자원 확보 능력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공급망 재편과 자원민족주의 확산 속에서 원료 조달 구조를 다변화하고 재생원료 활용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AI·전기차 시대가 여는 성장 기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비철금속산업의 부담 요인이지만, AI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재생에너지 산업 성장은 새로운 기회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구리는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망 투자 확대에 따라 수요 증가가 기대된다.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송배전망과 변압기, 케이블 등 전력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와 ESS, 재생에너지 산업 성장도 비철금속 수요 확대를 이끌고 있다. 전기차 경량화를 위한 알루미늄 수요와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태양광·풍력발전 설비와 전력망 구축 과정에서도 비철금속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비철금속협회는 AI 기술 발전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산업 전반의 AI 전환(AX)을 비철금속 산업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다.
업계는 이러한 수요 변화에 대응해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과 첨단산업용 제품 비중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산업시설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송배전망과 변압기, 전력 케이블 등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를 동반한다. 이에 따라 전력망 핵심 소재인 구리 수요 증가가 예상되며 알루미늄 역시 송전선과 전력 설비 분야에서 활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전기차 보급 확대는 차량 경량화를 위한 알루미늄 수요 증가와 함께 배터리용 니켈 수요 확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 설비, ESS 구축 과정에서도 다양한 비철금속이 사용되면서 에너지 전환이 새로운 수요 기반으로 자리잡고 있다.
■ 순환경제가 만드는 새로운 경쟁력
최근 비철금속 산업에서는 광산 확보 못지않게 재생원료 확보 경쟁이 중요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과 탄소중립 규제 강화로 스크랩과 재생원료가 새로운 전략 자원으로 부상하면서 재활용은 환경 보호를 넘어 공급망 안정과 탄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산업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알루미늄이다. 알루미늄은 재활용 과정에서 품질 저하가 적고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재생원료 활용 가치가 높다. 이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포장재 기업들은 재생원료 사용 비율 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며 주요국 정부도 관련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알루미늄 재활용국내에서도 알루미늄 순환경제 구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알루미늄 캔 회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고품질 재활용 체계 구축에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디지털제품여권(DPP), 에코디자인규정(ESPR) 등 환경 규제가 확대되면서 재생원료 사용 여부는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제품 생산 과정의 탄소배출량뿐 아니라 재생원료 사용 비율과 공급망 이력 관리까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알루미늄 순환경제 구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내 알루미늄 캔 회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동일 용도 재활용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 고품질 순환 체계 구축이 과제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단순 재활용을 넘어 자동차와 포장재, 배터리 소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고순도 재생원료 생산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스크랩 확보 경쟁이 광산 확보 경쟁만큼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스크랩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재생원료 확보를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향후 스크랩 확보 경쟁이 광산 확보 경쟁만큼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EU는 폐기물운송규정(WSR)을 통해 스크랩을 전략 자원으로 관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비철금속 산업 역시 공급망 안정과 탄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재생원료 활용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알루미늄뿐 아니라 동스크랩과 사용후배터리 재활용 산업도 중요한 성장 분야로 평가받고 있으며, 고품질 재생원료를 생산하고 산업 내에서 순환시키는 체계 구축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 재도약 위한 산업 생태계 구축 과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탄소규제 강화 속에서 국내 비철금속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우선 원료 확보 전략 다변화가 필요하다. 주요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인 만큼 해외 자원 개발과 장기 공급계약 확대, 우호국 중심 공급망 구축 등을 통해 조달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 경쟁력 강화도 과제다. 중국 기업들이 고부가 소재 분야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첨단 소재와 고기능 제품 중심의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
재생원료 활용 확대와 순환경제 체계 구축 역시 중요하다. 공급망 안정과 탄소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재생원료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원료 확보와 재활용 인프라 구축, 탄소규제 대응, 연구개발(R&D), 전문인력 양성 등 보다 실질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비철금속 산업은 AI와 데이터센터, 전기차, ESS, 방산, 반도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전략산업이다. 향후 경쟁력은 생산 규모보다 공급망 안정성과 재생원료 확보 능력, 첨단 소재 기술력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철강금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야드 고객센터
경기 시흥시 마유로20번길 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