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꼰대들의 종말

나이 든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꼰대’이다. 특히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를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다. 근래에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하는 직장 상사 등을 표현할 때 쓰인다.
외국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영어인 부머(boomer)를 사용한다. 결코, 달갑지 않은 말인 것은 분명하다.
만약 꼰대질하는 사람이 학교 교사라면, 군대 선임이라면, 직장 상사라면, 학교를 졸업하거나 제대나 퇴직하면 더는 볼일이 없다. 시부모·처부모라도 이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부모나 형제자매는 손쉽게 뗄 수가 없는 천륜의 관계이기에 다르다. 그런 꼰대 같은 가족에서 태어난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절연하는 것이다. 가족이라고 해도 피는 같을지라도 절연이 상책일 수 있다. 온갖 문제에 시달리지 않고 절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꼰대에게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오기를 부리며 본인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긴다. 특히 직장 상사 중에는 이러한 사람이 많다. 이러한 꼰대 상사로 말미암아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흔하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다 하여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마치 일제 강점기 잔재처럼 눈에 거슬린다.
이러한 상사는 구성원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조직을 결집할 수 없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
당연히 이러한 상사를 경영자가 좋아할 리 없다. 요즘은 충성스러운 상사보다 실적이 좋은 상사를 더 선호한다.
어떻게 쓰였든 꼰대는 경멸의 언어이다. 가부장적인 부모, 위계를 앞세우는 직장 상사, 시집살이의 전통을 고수하는 시어머니 등이 이에 속한다. 자신이 경험으로 얻은 지식과 정보를 항상 옳다고 믿으며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꼰대와 관계에는 존중이라는 생각은 없다. 합리적인 대화도 없다. 이처럼 직장에는 꼰대 같은 상사도 있지만 상사의 눈에 거슬리는 뺀질거리는 직원도 있다. 이러한 직원에게 세상을 먼저 산 경험으로 지적하면 큰일 난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옐로카드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꼰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다. 요즘 후배들은 도통 일에 열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전 9시 되기 전에 출근하면 벌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출근은 매일 정시다. 칼퇴근은 기본이다.
과거에는 낮에 뛰어다니다가 밤새워 보고서 만들고 사무실 한구석에 쓰러져 자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것이 괘씸해도 꾹 눌러 참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직장 내 괴롭힘의 범위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의 표현이 옳다. 밑에 직원도 회사 생활이 어렵지만, 상사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국 노동청에 지난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총 1만 6,373건으로 전년 대비 20.4% 증가했다. 5년 전(5823건)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접수된 신고 중 ‘개선 지도’ ‘과태료 부과’ ‘검찰 송치’ 등으로 이어진 사건은 전체의 약 8.2%(1330건)에 불과했다. 신고인이 스스로 취하한 사건은 9.7%, 법 위반 사항이 없다고 처리된 사건은 31%였다. 이 법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 때 성립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 갈등에서 비롯된 민원성 신고도 넘쳐난다고 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과거였으면 참고 넘어갔을 일도 신고로 이어지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된 지 7년을 맞았다. 그동안 직장 내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단순 업무 지시나 감정 다툼까지 ‘기분 상해죄’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꼰대 짓은 더는 발붙일 수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사장될 문화가 되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듯’이 ‘직장 내 괴롭힘 법이 무서워 갑질 못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어느 직장에서는 생명을 연장한 꼰대들 마지막 갑질이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연민(憐憫)으로 생각하는 것은 필자도 꼰대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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