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철강의 미래는 철강 밖에서 결정된다”

컬럼(기고) 2026-07-27

미국 월드스틸다이내믹스(WSD)가 주관한 ‘Global Steel Dynamics Forum’의 화두는 분명했다. 세계 철강산업이 단순한 침체가 아닌 ‘재조정의 시대’에 들어섰고 공급과잉, 보호무역, 에너지 부족, 탈탄소 비용, 인공지능(AI)이 한꺼번에 산업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철강 회사의 경쟁력은 고로와 전기로를 얼마나 잘 가동하는가 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력과 원료를 어떻게 확보하고, 무역장벽에 어떻게 대응하며, 저탄소 제품의 시장을 어떻게 만들고, AI를 생산현장에 얼마나 깊게 연동하는지가 생존을 가른다.

첫째, 세계 철강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수요 부족보다 공급과잉이다. 포럼에서는 중국의 조강 생산이 10억 톤 아래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세계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과잉 설비가 수익성과 무역 질서, 탈탄소 투자를 동시에 압박한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관세로 수입을 줄이고 있으나 유럽은 미국으로 가지 못한 철강이 밀려들면서 수입 압력이 커지고 있다.

무역은 자유무역에서 공정무역으로, 다시 관리무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원산지와 품목을 바꿔 우회수출하고 각국 당국은 이를 막기위해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는 ‘두더지 잡기’가 반복되는 동안 철강재뿐 아니라 철강을 사용한 최종제품에도 관세를 부과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보호무역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미국 철강업계의 최고경영자들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과거의 자유무역 체제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문제는 보호무역이 공급과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동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의 수입장벽이 높아지면 물량은 유럽과 동남아로 향하고, 유럽이 다시 장벽을 세우면 제3국 우회수출이 늘어난다.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동안 세계 전체의 비효율은 커진다.

한국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철강국에는 더 불리하다. 앞으로는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드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생산지와 원산지, 탄소배출량, 현지투자, 공급망 안보까지 함께 증명해야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철강 수요의 미래까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중국의 부동산 중심 수요는 둔화하지만 인도의 도시화와 인프라 투자는 이제 시작이다. 전기차, 송전망, 변압기, 풍력발전, 데이터센터도 새로운 수요처다. 특히 대형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설비와 건축용 철강을 요구한다.

철강산업은 과잉설비와 신규 수요가 공존하는 기묘한 국면에 들어섰다. 앞으로의 승자는 생산능력이 가장 큰 회사가 아니라 원료·에너지·물류·수요처를 수직적으로 연결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제때 공급하는 회사다. 인도 진달스틸 회장의 발언처럼 생산능력만 늘리는 것은 ‘영양가 없는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과 같다.

둘째, 철강의 미래를 결정할 주요 외부 변수는 에너지다. 전기로는 전기가 원가의 핵심이고, 수소환원제철은 전력으로 만든 수소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런데 AI와 데이터센터가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면서 철강은 새로운 경쟁자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전력망 접속에는 수년이 걸리고 변압기와 송전설비 공급도 부족하다. 데이터센터는 철강 수요를 늘리는 고객인 동시에 전력을 먼저 가져가는 경쟁자다. 따라서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을 따로 설계하는 시대는 끝났다.

포럼에서는 “가용한 모든 발전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기존 원전, 천연가스, 에너지저장장치, 차세대 원자로까지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향은 현실적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50%를 넘으면 비용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식의 관측도 제시됐지만 단정은 경계해야 한다. 계통비용은 전력망 구조, 지역 간 연계, 저장장치, 수요반응, 시장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만 늘리고 송전망과 유연성 자원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자력과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차세대 원자로에 대한 기대도 컸다. 미국은 오랫동안 원전 비중이 정체됐지만, AI 시대에는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무탄소 전원의 가치가 다시 커지고 있다. 테라파워는 와이오밍주 나트륨 원자로의 건설허가를 확보했고, 포럼에서는 2030년대 차세대 원자로의 상용 확대 가능성이 제시됐다.

그러나 SMR이 당장 값싼 전력을 공급할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기술적 가능성과 경제성은 다른 문제다. 초기 호기의 건설비와 공기, 연료 공급망, 규제비용을 확인해야 한다. 철강사가 SMR을 검토하더라도 원가경쟁력을 훼손한다면 답이 될 수 없다. 원전과 SMR은 재생에너지의 대체재가 아니라 재생에너지·저장장치·전력망과 결합해야 하는 보완재다.

셋째, 저탄소 철강은 방향은 확정됐지만 속도와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유럽 철강사들은 탈탄소가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보다 규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ETS)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유지되는 한 투자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소와 탄소 포집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흔들리면서 수소·천연가스 직접환원철(DRI) 프로젝트 다수가 지연됐다. 먼 미래의 수소만 기다리기보다 당장은 공정 효율 개선, 스크랩 확대, 전기로, 천연가스 DRI와 HBI를 활용해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포스코의 연산 30만 톤 규모 HyREX 실증플랜트도 같은 의미를 갖는데, 실증을 상용화의 축소판이라고 단정하는 낙관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실증은 실패 가능성을 확인하고 공정조건과 비용을 다시 설계하는 일종의 숙제 시간이라고 포럼 참여자들은 강조했다. 실증 설비가 돌아간다고 곧바로 250만 톤 급 상용 설비의 경제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수소 공급량과 가격, 내화물 수명, 설비 안정성, 철광석 품위, 전력계통까지 검증해야 한다. 탈탄소 경쟁에서 속도는 중요하지만 단계를 건너뛴 속도전은 더 위험하다.

더 큰 병목은 수소보다 원료일 수 있다. 포럼 발표에 따르면 해상운송 철광석 가운데 직접 환원에 적합한 고품위 광석(DR급 철광석)은 극히 제한적이다. 세계가 동시에 전기로를 늘리면 프라임 스크랩도 부족해진다.

저탄소 제철의 경쟁은 수소 확보 경쟁인 동시에 고철과 고품위 철광석 확보 경쟁이다. 철광석 산지와 값싼 재생에너지가 결합된 중동·북아프리카, 브라질, 서호주에서 DRI를 생산하고 소비지에서는 이를 녹이는 국제분업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수소환원제철 기술만 볼 것이 아니라 철광석, HBI, 스크랩, 항만, 전력과 수소를 하나의 공급망으로 설계해야 한다. 실증을 건너뛰고 곧바로 대형 상용설비로 가면 실패 비용이 산업 전체로 번질 수 있다.

넷째, 이른바 ‘그린 프리미엄’은 아직 확정된 시장이 아니다. 미국 누코어는 저탄소 철강 브랜드 ‘에코닉(Econiq-RE)’을 자동차업체에 공급하고 있지만 판매량과 프리미엄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독일 SHS의 경영자도 저탄소 철강이 고객의 선호는 얻을 수 있어도 추가 가격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자동차업체 역시 전환 비용을 모두 떠안을 여력이 없다. 저탄소 철강이 필요하다는 선언과 더 비싼 가격을 실제로 지불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프리미엄이 성립하려면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저탄소 철강의 정의와 측정방식이 통일돼야 하고, 실제 감축과 탄소 상쇄를 구분해야 한다. 자동차·조선·건설사가 장기 구매계약으로 물량을 보장해야 한다. 공공조달과 저탄소 제품 의무사용으로 초기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탄소가격, CBAM, 탄소차액계약 등으로 기존 철강과의 비용 차이를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품질과 납기, 대량공급 능력이 기존 제품과 같아야 한다.

친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그린 프리미엄은 소비자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와 계약으로 만들어져야 함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AI는 철강산업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마법이 아니다. 그러나 생산현장의 작은 오차를 줄이고 숙련자의 지식을 보존하는 데서는 이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포럼에서는 원료 배합과 공정 조건을 최적화해 톤당 6달러의 이익을 개선했다는 공급업체 사례, 카메라와 3차원 측정으로 스크랩의 품질과 부피를 판별하는 사례, 설비 이상을 예측하고 구매 협상을 자동화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AI의 가치는 조업, 정비, 품질, 에너지, 조달을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고 경영자들은 말했다.

제철소의 AI는 범용 챗봇과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피치못할 환각이 발생하면 답변이 틀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품질사고와 설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데이터 표준화, 센서 신뢰성, 사이버보안, 현장 검증과 인간의 최종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 숙련공을 AI로 대체하려 하기보다 숙련공의 암묵지를 AI에 축적하고 작업자가 더 빨리 판단하도록 돕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AI는 인력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부족한 인력을 더 강하게 만드는 기술이어야 한다. 철강사의 AI 격차는 모델 성능보다 공장 데이터의 품질과 현장 책임자의 실행력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틀 간 이어진 포럼의 마지막 발표는 일본제철에 인수된 US스틸의 데이비드 버릿 회장이 장식했다. 그는 인수 건을 두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마주했던 과정을 공개했다. 트럼프와 핵심 참모들은 처음에는 인수에 반대했지만, 고용 유지와 대규모 투자, 미국 정부의 ‘골든 셰어’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2025년 6월 18일 피인수를 확정했다. 버릿 회장은 이를 ‘미국의 근성과 일본의 탁월함의 결합’이라고 표현했다. 인수 이후 계획도 명확했다. 펜실베이니아의 고로 자산, 아칸소의 전기로, 오하이오와 앨라배마의 고부가가치 설비를 연결해 현대화·효율화·수직계열화를 추진하고, 자동차와 에너지 산업용 프리미엄 제품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거래의 핵심은 국적 논쟁이 아니다. 일본제철은 미국 시장과 자산을 얻었고, US스틸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본과 기술을 얻었다. 미국 정부는 고용·생산·투자에 대한 통제장치를 확보했다. 개방과 산업안보를 거래구조 안에서 결합한 것이다.

한국 철강산업도 여기서 배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로냐 전기로냐’,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 ‘기술이냐 시장이냐’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무탄소 전력, 안정적인 원료 공급망, 단계적인 저탄소 공정, 시장을 만드는 제도, 현장형 AI를 동시에 묶어야 한다. 정부도 기술개발 보조금만 나눠줄 것이 아니라 전력망·수소·원료·공공조달·금융을 하나의 산업 전환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 철강의 미래는 제철소 안이 아니라 그 바깥의 시스템에서 결정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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