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산업의 쌀” 방어막 올린 정부…열연·후판 동시 관세로 기초소재 방어선 구축
정부가 철강소재 수입재에 대한 전면 방어에 나섰다. 열연강판과 후판 등 양대 핵심 제품군에 대해 중국과 일본을 겨냥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단행하면서, 국내 공급망 보호 전략이 본격 가동되는 모양새다.
산업 경쟁력의 뿌리이자 제조업 원가구조의 시작점인 ‘산업의 쌀’ 방어 조치를 통해, 정책적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 “산업기초 통제권 지킨다”…정부의 정책 선언
이번 조치는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고, 산업 근간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방향성이 선명하게 반영된 사례다. 철강산업은 수요산업의 ‘그림자 자산’으로 기능하면서도, 가격 교란과 수입재 쏠림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구조다. 국산 소재가 버티지 못하면, 조선·자동차·건설 등 후방 산업까지 줄줄이 흔들린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무역위원회는 이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내놨다. 수년간 이어진 수입재 저가공세에 대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본격적인 개입에 나섰고, 이는 단순 가격 방어를 넘어 ‘공급망 전략’의 일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2025년 들어 가장 강경한 무역구제 조치로 꼽힌다.

첫 타깃은 후판이었다. 올해 2월 예비판정과 4월 잠정관세 부과를 통해 중국산 열간압연 후판에 대해 최대 38%의 반덤핑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이에 조선·중공업 등 수요산업에 적잖은 충격을 줬지만, 국내 철강사에는 ‘시장 회복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후판은 조선용 기자재와 에너지 산업에 투입되는 고중량 소재로, 일정 수준의 가격 보장이 없다면 품질 경쟁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이어 7월에는 열연강판에 대한 예비판정이 나왔다. 중국과 일본산 탄소·합금강 열연에 28.16~33.57%의 잠정 관세가 부과되며, 수입 점유율이 40%에 육박했던 시장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일본산은 ‘프리미엄 수입재’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덤핑률이 업계에 충격을 줬다.
이에 후판과 열연강판, 두 핵심 소재에 대한 수입규제가 동시에 작동되기 시작했다. 대형 제조사 관계자는 “후판은 이미 수입이 급감했고, 열연강판 역시 관세 영향이 본격화하면 유통가격 회복과 국산 전환이 더 빨라질 것”이라 말했다.
◇ 수입재 흔들리자, 국산 회귀 움직임…시장 반응 엇갈려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현대제철,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계는 “덤핑 재고의 시장 교란이 완화되면, 가격 정상화와 생산 계획 안정이 동시에 가능해질 것”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실제 일부 유통사에서는 “관세 발표 직후, 수요업체들이 국산 제품 기준과 가격 조건을 다시 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조선·건설·기계 등 수요업계는 부담을 토로한다. 중장비 제조사 관계자는 “철판 조달단가가 10%만 올라가도, 납품 원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결국 이 여파는 발주업체나 완성품 수요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요업계에서는 “가격보다는 공급안정성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철강사들이 과거 수요자 중심의 납기 대응과 품목 다변화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조치는 국제적 흐름과도 맞물린다. 미국과 EU 역시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중국·러시아·인도 등 주요 수출국에 잇달아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특별시장상황(PMS)’ 개념을 활용해, 원가 신뢰가 부족한 국가에 대해 자체 구성가격으로 덤핑률을 재산정하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도 그간 WTO 체제에 충실한 ‘수동 대응’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 수급 통제와 시장 질서 회복에 나선 모양새다. 이번 열연강판 예비판정에서 일본산에 더 높은 덤핑률이 부과된 배경에는, 일본 수출업체들이 현지 내수보다 낮은 가격으로 한국에 판매해 온 가격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선진국 수준의 자국산업 보호 메커니즘을 구축할 시점”이라며 “반덤핑 관세는 시작일 뿐, 이후 실효성 확보를 위한 제도 연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보호 이후의 전략…자립구조 정착이 진짜 과제
수입재의 저가 공세는 한동안 차단할 수 있지만, 진짜 과제는 그 이후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제조사 업계 관계자는 “이번 관세 조치로 단기 수급은 안정되겠지만, 국산 소재의 공급 안정성과 가격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요업계의 불만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후속 과제도 명확하다. 철강업계는 실수요 중심의 정책 설계, KS 인증제도 보완, 철강 공급망 구조 고도화 등을 우선과제로 꼽는다. 무역통상 관계자는 “덤핑 대응 이후 WTO 분쟁 가능성이나 수출국과의 통상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국내 제도 정비와 기술기준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격 방어’에 그치지 않고,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수요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국산 후판이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고부가 수요까지 아우를 수 있는 품질 경쟁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조선용, 자동차용, 에너지 플랜트용 고기능 강재 개발과 안정적 납기 대응이 동반되지 않으면 생존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철강 제조사의 내부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조사 관계자는 “임원진이 ‘이번에 몇 톤 더 팔았느냐’ 식의 양적 접근만 반복한다면, 전략 제품도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소모될 수 있다”며 “결국 어떤 품질을, 누구에게, 어떻게 파는지가 경쟁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야드 고객센터
경기 시흥시 마유로20번길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