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업체 울리는 용도세율…中 후판 반덤핑 예외항목이 '대기업 전용'이 된 이유
정부가 중국산 후판 반덤핑 조치 과정에서 내마모강과 고장력강 등 특수강종을 예외 품목으로 지정했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예외는 명목일 뿐 실사용은 대기업만 가능한 구조”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전 용도확인과 사용처 추적을 의무화한 관세법 제83조(용도세율)가 사실상 적용 장벽으로 작동하면서, 예외 규정의 혜택이 유지보수 시장을 주로 구성하는 중소·영세 정비업체가 아닌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내마모강과 고장력강은 건설기계와 산업장비 정비 시장에서 필수로 쓰이는 핵심 소재다. 다만 해당 시장은 영세·소규모 수리업체가 시장 수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요도 설비 현장에서 1~2장씩 즉시 교체되는 형태가 일반적이라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이에 사전 용도 확인서, 실사용 사업장 증빙, 사후 검증까지 요구하는 용도세율 절차는 이러한 산업 구조와 맞물리지 못해, 영세 정비업체와 유통사에는 사실상 예외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중소·영세 정비업체 일각에서는 “용도세율 조건이 사실상 독소항으로 작용해 시장 접근성이 낮은 업체에 더 불리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은 대기업은 요건 충족이 가능한 반면 중소업체는 관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사업 지속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테인리스 후판 반덤핑 예외처럼 규격 기준만으로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 등 간소화 방향이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내마모강과 고장력강 등 중국산 후판 예외항목, “설계는 포괄적, 적용은 제한적”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고장력강과 내마모강을 다루는 유통·수요 업계에서는 이미 “이번 예외 규정은 대기업만 활용 가능한 구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예외 기준은 겉으로만 보면 범위가 넓다. 기획재정부령 제1145호는 NM400·NM500 등 내마모강을 대상으로 브리넬 경도 370~550HBW, 두께 120밀리미터 이하, 폭 2,600밀리미터 이하일 경우 반덤핑 적용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했다.
정부가 중국산 후판 반덤핑 조치 과정에서 내마모강과 고장력강 등 특수강종을 예외 품목으로 지정했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예외는 명목일 뿐 실사용은 대기업만 가능한 구조”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철강금속신문DB고장력강도 인장강도 980MPa(메가파스칼) 이상을 기준으로 동일한 규격 제한을 적용해, 사실상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주요 고강도 강종 대부분을 예외항목에 포함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만 보면 정부가 산업 기반 보호와 긴급 유지보수 용도 수요를 고려해 예외 범위를 넓게 설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라며 “특히 해당 품목들은 건설장비, 발전·하역설비, 광산·중장비 구조재 등 다양한 산업군에 사용되는 만큼, 예외 지정 자체는 현실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문제의 핵심이 ‘예외항목 지정 여부’가 아니라 ‘예외 활용 가능 여부’라는 데 있다.
정부는 중국산 고장력강과 내마모강 후판의 예외항목 지정과 동시에 해당 품목에 ‘관세법 제83조(용도세율)’ 절차를 의무화했고, 이 조항이 사실상 예외 적용을 대기업 중심으로 제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한 수입업체가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안내문에서도 같은 내용이 확인됐다. 관세청은 “예외 품목이라도 용도세율을 적용하려면 사전 용도확인과 실사용 사업장 증빙, 사후관리 절차가 필수”라며 “사용처와 공정을 확인할 수 없거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추징 및 제재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용도세율의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운영 방식이 내마모강·고장력강의 실제 사용 구조와 맞지 않아 제도 현실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요건이 현장 유지보수 중심의 산업 특성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당 강종은 대량 설비 투입보다 노후 장비 보강과 긴급 교체 비중이 높고, 반장 단위 구매와 이동식 용접 등 비정형 사용이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사용처 또한 일반 건설 현장, 항만, 정비소 등으로 분산돼 있어 공장 주소·용도확인·사후관리 등을 요구하는 용도세율 조건과 맞물릴 수 없어, 사실상 예외 적용의 활용 난이도가 높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산업 특성상 공장 주소 제출, 사용 용도 사전 확정, 추적 기반 사후관리 등 용도세율 적용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유통망에서도 예외 적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고장력 및 내마모강 유통업체들은 수요 변동에 대비해 수천 톤 규모의 재고를 확보하지만, 최종 판매는 1~2장 단위로 수천 개 정비업체로 흩어져 사용처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예외를 열어줬지만, 실제 현장 구조에서는 이러한 요건 충족 자체가 설계상 불가능하다”라며 “결국 예외 조건을 갖춘 대기업 일부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은 제도 활용이 가능한 구조다. 건설기계 대기업 및 완성장비 제조사는 공장 주소, 생산라인, 설비 위치, 사용 용도 기록, ERP(전사적 자원관리,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기반 이력 추적 등이 갖춰져 있어 용도세율 요건을 충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에 중국산 후판 반덤핑 예외 적용 여부는 기업 규모에 따라 갈리고 있으며, 대기업은 반덤핑을 적용받지 않는 반면 중소·영세 정비업체는 최대 34.10% 수준의 관세를 그대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STS 모델이 비교 사례로…“동일한 기준 체계 필요” 목소리 확산
업계에서는 최근 스테인리스 후판 반덤핑 규칙(기획재정부령 제1140호)이 내마모강·고장력강 예외 체계 설계의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해당 규정은 재질 번호, 규격 코드, 두께·폭 기준만 충족하면 자동으로 예외가 적용되는 구조이며, 별도의 용도 확인이나 사후관리 절차가 없다.
현장에서는 STS의 반덤핑 예외항목 방식이 보다 산업 수요 구조에 부합하는 설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내마모강·고장력강이 범용 구조재이면서 유지보수 시장 중심으로 소비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재질 중심 인증 체계를 적용하는 편이 더 실효적이라는 의견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특정 품목을 예외로 지정한 취지는 이미 인정된 것이므로, 절차 또한 재질 확인 방식으로 단순화되면 업계 전체에 적용 가능성이 생긴다”라며 “STS 사례처럼 강종·밀시트·마킹으로 확인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같은 반덤핑 제도 내에서도 품목별 예외 체계가 지나치게 상이하면 정책 정합성이 흔들릴 수 있다”라며 “기준 체계의 일관성 확보는 업계 혼란을 줄이고 행정 부담 또한 낮출 수 있는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 적용 기준 유지될 경우 시장 영향 불가피…‘비용 전가 구조’ 현실화 우려
업계에서는 현행 기준이 유지될 경우 시장 왜곡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수입·유통업계는 예외 적용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고를 무리하게 확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시장에서는 반덤핑 부담과 환율 상승이 맞물리며 가격이 추가로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현장 유지보수 수요가 절대다수인 산업 구조 특성상 긴급 대응이 필요한 장비 정비 일정이 지연되고 가동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욱이 예외 적용이 어려운 중소 정비업체와 유통업체가 관세 약 30%를 그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시장 공급 기반 약화와 중소업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예외를 지정해놓고 실질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게 만든 셈”이라며 “예외 취지를 살리려면 용도세율 적용 절차를 현실에 맞게 간소화해야 한다”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고장력 및 내마모강 수요업계도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관세법 제83조의 용도세율은 특정 용도로 수입된 물품이 다른 영역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승인 요건과 사후관리가 붙은 제도라는 점에서는 타당성이 있다는 평가다.
다만 사후관리 범위가 강화된 이후, 내마모·고장력 후판처럼 다품종·소량 수요가 일반적인 품목에는 제도 목적이 ‘남용 방지’가 아닌 ‘접근 제한’으로 전환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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