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국내 소비 3% 줄 때, 中 후판 수입 41% 폭증…국내 가격·이익 뿌리째 흔들렸다
국내 시장을 뒤흔든 중국산 열연 후판에 대해 정부가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 무역위는 8월 28일 최종 판정에서 9개 수출자의 가격인상 약속을 수락하고, 그 외 공급자에는 최대 34.1% 관세 부과를 기재부에 건의했다.
수입 급증과 저가 공세로 국내 산업의 가격과 이익이 동시에 꺾였다는 피해가 입증된 결과다. 다만 내마모강·고장력강 등 일부 특수강종은 공급 공백을 이유로 조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업계는 “향후 5년간 시장 가격구조를 새로 짜는 분수령”이라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이번 판정을 통해 국내 산업이 입은 피해를 구체적인 수치로 입증했다. 단순한 경쟁 심화가 아니라, 구조적인 가격 왜곡과 수익성 악화를 불러왔다는 점이 핵심이다. 국내 생산기반이 흔들린 만큼, 향후 5년간 제도적 관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 피해의 실체, 수치로 드러나
국내 후판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입이 오히려 급증한 것은 이례적이다. 무역위원회가 발표한 최종판정 의결서에 따르면 소비는 연평균 3% 이상 줄었지만, 중국산은 40% 넘게 늘며 점유율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국내 업체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중국산이 빠르게 잠식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가격도 국내 업체들의 발목을 잡았다. 원가가 오르는데 판매가격은 사실상 동결 수준에 그쳤다. 2023년 중국산 후판 가격이 20% 가까이 빠지자, 국내 유통가격도 덩달아 10% 넘게 떨어졌다. 원가 인상분을 전가하지 못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고, 그 결과 2024년 상반기에는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손익뿐 아니라 가동률, 고용효율성까지 하락 곡선을 그렸다. 가동률은 3%p 이상 떨어졌고, 1인당 부가가치는 30% 가까이 줄었다. 이는 단순히 수익 문제를 넘어 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 중국산 후판과 얽힌 인과관계 논란 정리
일부에서는 이번 피해가 덤핑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태풍과 파업, 대형 조선 수주 등 국내 공급 차질이 일시적으로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에는 태풍 피해로 제철소 설비가 멈추기도 했다.
다만 위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설비가 복구된 이후에도 판매량과 이익이 계속 줄었기 때문이다. “일시적 요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락”이라는 게 결론이다. 피해가 장기간 누적됐고, 중국산 가격 하락과 시점이 맞물려 나타난 점이 결정적 근거로 제시됐다.
결국 위원회는 “가격 억제가 직접적 원인”이라고 못 박았다. 수요산업의 발주 지연, 국제 원자재 변동 같은 부수적 요인은 일부 영향을 줬을 뿐, 국내 산업의 구조적 피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 무역위의 최종조치, ‘투트랙’ 병행
위원회는 중국 9개 수출자의 가격약속을 수락하면서도, 약속에 참여하지 않은 공급자에는 34.1%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두 가지 방식이 동시에 작동하는 ‘투트랙’ 조치다. 업계에서는 “협력하는 업체에는 기회를 주고, 그렇지 않은 쪽은 강력히 제재하는 방식”으로 해석한다.
가격약속 조건은 세밀하게 설계됐다. 최저수출가격(MIP)을 정해두고, 중국 마이스틸(Mysteel) 분기 가격 변동률에 따라 조정한다. 제품군별로 일반, TMCP, 열처리로 나눠 각각 가격 기준을 두는 방식이다. 특히 보세창고를 통한 반입 물량은 약속 적용에서 제외돼, 회피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또한 약속을 위반하면 즉시 관세가 부과되는 스냅백 규정이 마련됐다. 제3국 경유, 제3자 판매 등 우회 수출도 금지됐다. 사실상 국내 시장으로 들어오는 모든 중국산 후판 거래가 감시망 아래 놓이는 구조다.
◇ 시장의 의미, ‘새 바닥가’ 등장
이번 조치로 국내 시장에는 새로운 ‘가격의 바닥’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중국산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던지면 국내 업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내려가야 했지만, 이제는 일정 수준 이하로는 수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업계는 이를 두고 “가격 정상화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제조사 관계자는 “그동안 후판 가격이 원가에도 못 미쳤다”라며 “이제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실수요 업계의 원가 부담은 일부 커질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조선·건설기계 업계에서는 원자재 조달 비용 상승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중국산 저가재 의존도가 높은 업체일수록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요업계 관계자는 “특수강종을 제외한 범용 후판은 선택지가 좁아졌다”며 “단기적으로는 발주 지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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